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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스 업적 지우기에 몰두한 헤루 자카르타 주지자 직무대행

beautician 2023. 6. 24. 11:18

자카르타 주지사 직무대행 취임 8개월의 엇갈린 평가

 

헤루 부디 하르토노 자카르타 주지사 직무대행(오른쪽 두 번째)이 2023년 6월 11일 중부 자카르타 머르데카 남로 미대사관 앞 인도 상태를 시찰하고 있다. (Antara/PPID DKI Jakarta

 

2024년에 있을 지방선거 이후 신임 주지사가 취임하는 날까지를 임기로 자카르타 주지사 직무대행에 지명되어 이제 8개월차를 맞은 헤루 부디 하르토노는 그동안 일부 자카르타 주민들에겐 큰 만족감을 선사했지만 그 숫자만큼의 또다른 시민들에게 적잖은 실망감을 안기며 엇갈린 반응을 이끌어냈다.

 

주정부가 기존에 세워놓은 큰 틀의 계획을 벗어날 수 없는 직무대행의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헤루 스스로 훈련된 도시계획 전문가인만큼 그에게서 좀 더 획기적인 정책변화를 기대하는 이들은 과거 대통령실 사무처장으로서 대통령과 맺은 각별한 관계를 적절히 지렛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자카르타 주지사로 근무하는 동안 쌓은 업적을 발판으로 내년 대선에 출마하려는 전임자 아니스 바스웨단의 유산을 훼손하고 지우는 데에 너무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지나치게 정파적, 정치적이란 뜻이다. 헤루 자신은 그러한 비판에 공식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있지만 여러 여권 정당들이 나서 그를 옹호하고 있다.

 

헤루는 실제로 작년 10월 직무대행으로 취임한 이후 도시의 산적한 문제들을 다루는 데에 있어 아니스와 전혀 상반된 접근방식을 취했다.

 

그의 첫 번째 공식 행보 중 하나는 ‘정상화’라는 명목으로 찔리웅(Ciliwung) 강 제방들을 홍수 방지 수단으로 되살리는 프로그램이었다. 동시에 그는 도시 완충지역에 하수시스템과 댐 건설을 재검토했다.

 

그러나 2017년에 취임한 전임자 아니스의 접근방식은 헤루와 전혀 달랐다. 그는 이른바 ‘자연화’를 지향하여 제방들을 녹지로 바꾸는 방식의 홍수방지대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 방식은 해당 지역 토지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제동이 걸렸다. 녹지화할 하수변 땅을 사들이지 못한 것이다.

 

헤루가 개입하기 전 아니스는 정적들의 초기 비판을 감수하면서 배수구 방식을 도입해 침수된 지역의 배수를 촉진시켜 침수시간을 성공적으로 줄이기도 했다.

 

그러나 헤루 직무대행은 취임한 후 전임자의 ‘자연화’ 방식을 유지하지 않기로 하고 예산을 크게 삭감한 도시중기개발계획에 따라 배수용 구멍들을 뚫는 작업만 계속했다.  

 

이에 대해 공공정책전문가 아구스 빰바기오(Agus Pambagio)는 선거철에 접어들면서 헤루가 운신할 수 있는 여지가 크게 축소된 것이라는 평가로 그를 변호했다. 주요 선거들을 1년 앞둔 2023년은 기본적으로 정치의 해이므로 중앙정부나 주의회 모두 주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공약을 내걸거나 새 프로젝트에 대규모 예산을 편성하는 것을 기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동 정책들

그를 주지사 직무대행에 임명하던 자리에서 조코위 대통령은 홍수피해완화, 교통관리, 도시계획 세 가지 문제의 해결을 지시했다. 이들은 북부자카르타 시장과 자카르타 주정부의 지역문제국제관계국장을 역임한 헤루에게 있어 대부분 익숙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해당 지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그는 시민들을 분개하게 만들었다. 특히 홍수피해완화 부분에서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정책들을 도입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교통문제에서는 지난 4월 교통흐름을 원활하게 한다며 남부자카르타의 인도와 자전거도로를 없애고 32개의 유턴 포인트를 닫아버렸다. 이에 분개한 보행자, 자건거 운전자, 자동차 운전자들이 모두 목소리를 높이자 헤루는 결국 해당 결정을 번복했다.

 

더욱 최근에는 나날이 악화되는 자카르타 대기오염에 대해 활동가들이 지적하자 ‘(대기오염을) 다 날려드리지’라며 농담으로 받아 비난을 자초했다.

 

자카르타의 만성적 교통정체 해결을 위해 헤루는 민간기업들이 오전 8시에서 10시 사이에 나누어 출근하도록 하는 탄력출근제를 제안했으나 생산성 악화를 우려하는 고용주는 물론 피고용자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는 올해 자전거 차선에 배정된 380억 루피아(약 32억3,100만 원) 예산에 대해 신규 차선을 더 만들지 않고 기존에 만들어진 자전거 차선을 ‘최적화’하겠다며 75억 루피아(약  6억3,800만 원)로 대폭 삭감했는데 이 역시 전임 아니스 주지사의 정책을 완전히 역행한 것이다.

 

아니스는 보도와 자전거 자선 확충을 자신의 대표적 프로그램으로 삼아 자카르타 시내에서 차량 의존도를 줄이겠다며 연장 103 킬로미터의 자전거 차선과 67개 자전거 공유 스테이션을 만들었고 연장 265킬로미터의 보도를 개-보수했다.

 

엇갈린 반응

헤루 직무대행은 이상 열거한 것처럼 심심찮게 악명을 떨치면서도 여러 여론조사에서 자카르타 주민들로부터 의외로 꽤 높은 ‘정책 연속성’ 측면의 만족도를 이끌어 냈다.

 

인도네시아 퍼스트 스트림(ASI)의 여론조사에서는 헤루의 첫 6개월간 시정에 대해 60%의 자카르타 주민들이 만족하다며 손을 든 것으로 나타났다. 누산타라 전략네트워크(NSN)라는 또 다른 여론조사기관이 지난 3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자카르타 시민들의 만족도가 64.5%에 달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정보가 제한된 일반 시민들의 평가다. 전문가들은 헤루 직무대행의 주정부가 여러 고질적인 문제들에 대해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시문제 전문가 니르워노 요가(Nirwono Yoga)는 헤루가 홍수, 교통, 도시공간계획 등에 있어 특별한 돌파구를 마련하거나 심대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볼 수 없다며 혹평했다. 홍수피해완화 정책은 느릿느릿하기 한이 없고 심각한 대기오염 문제나 교통정체에 대한 대책은 정체상태라는 것이다. 그는 정당이나 주의회의 압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헤루 직무대행이 이러한 문제들을 개혁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좀 더 용기를 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도시연구를 위한 루작센터의 엘라사 수따누자야(Elisa Sutanudjaja)는 그가 대통령이나 중앙정부와 긴밀한 관계에 있으면서도 의미있는 변화를 도출하기 위해 이를 활용하는 데에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도시개혁을 위해 스스로 가진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전임자 아니스 업적 지우기에 지나치게 매진했다는 것이다.  

 

엘리사는 이미 10여 년간 진행되지 못한 도로통행료 전자징수시스템과 10대의 열차들을 퇴역시키면서 더욱 악화된 출퇴근 열차서비스를 헤루 직무대행이 다루었어야 할, 그러나 결국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한 대표적인 사업의 예로 들었다.

 

“헤루 직무대행이 할 수 있는 일들은 넘쳐나지만 그는 그런 것을 위해 의미있는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고작 아니스가 만든 도시 슬로건을 변경하는 일을 먼저 했습니다. 헤루가 아니스의 유산을 지우는 데에만 몰두한다는 사람들의 비난은 하나도 놀라울 게 없습니다.” 엘리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한편 헤루와 주정부 관계자들은 이 기사를 위한 관련 인터뷰에 즉시 응하지 않았다.

출처: 자카르타포스트
https://www.thejakartapost.com/paper/2023/06/22/caretaker-government-in-jakarta-brings-in-mixed-result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