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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

애견 기저귀는 개를 위한 것일까?

beautician 2023. 5. 13. 11:56

기저귀

 

아기들을 위한 기저귀 말고도 다양한 용도의 기저귀들이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시간이 많이 지난 후의 일입니다.

 

그리고 노인들을 위한 ‘성인용 기저귀’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걸 필요로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서는 생각이 좀 많아지는 것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아기들에게 기저귀가 필수품인 것처럼 이 사회의 노인들 중 일부에게도 기저귀는 필수품일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서글퍼해야 하는 일일까요?

 

국회에서 필리버스터를 하는 국회의원들 중엔 기저귀를 차고 단상에 올라가는 이들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기저귀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기저귀엔 뭐랄까, 어떤 의미에서 ‘불가항력에 대한 저항’이란 이미지가 있는데 국회의원들이 정치적, 또는 개인적 목적으로 그 이미지를 훼손하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애견 기저귀’라 하는 개에게 채우는 기저귀는 인도네시아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내가 사는 북부 자카르타 끌라빠가딩 지역의 모이(MOI – Mall of Indonesia)라는 몰은 2년 전쯤부터 애완견을 데리고 입장하는 것이 허용되었는데 그 조건이 개들에게 기저귀를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말이면 기저귀를 차고 돌아다니는 개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몰 어디에 있든 개 짖는 소리가 메아리 치고요.

 

기본적으로 개 짓는 소리엔 스트레스 받지 않습니다. 인간들은 제 좋을 대로 마구 살아가면서 개들은 짖는 게 본능인데 그걸 못하게 한다는 게 말이 안되니까요. 개는 개답게,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개에게 채운 기저귀가 개답지 않다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비인간적인게 아니라 비견(犬)적이라는 겁니다.

집에서 키우는 개들에게 신문지를 말은 봉으로 때리며 훈련시켜 화장실에서 변을 보게 만드는 것도 개들 입장에서는 고문이라 생각합니다. 집 밖에 둬야 할 개를 집 안, 방 안으로 들이면서 인간의 잣대를 들이밀며 개들에게 개답지 않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은 인간 이기심의 발로이니까요.

 

몰에서 돌아다니는 개들에게 채운 기저귀에서 그런 이기심을 느꼈습니다.

자신들은 개를 사랑하는 애견인이라 하면서 사실은 개를 몰에 데려가겠다는 인간의 의지, 그 이기심이 기저귀라는 형태로 작동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인간들을 위한 기저귀는 인간을 인간답게 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럼 개에게 채운 기저귀는 개를 위한 것일까요? 당연히 인간을 위한 것이죠.

 

과유불급 (過猶不及)

그 단어가 생각났습니다.

 

2023.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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