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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

랩톱에 담긴 진심

beautician 2022. 4. 12. 11:47

랩톱에 담긴 진심

 

 

이 글의 장르는 수필에 가까우니 동화와는 거리가 멀지만 어딘가 좀 동화 같을지도 모릅니다.

 

인도네시아에 27년 살면서 오랫동안 살갑게 지냈던 사람이 둘 있습니다. 한 명은 직원으로 채용했다가 동업자가 되어 사업 하나를 함께 대차게 말아먹었던 친구이고 또 다른 한 명 역시 엉겁결에 직원으로 떠안았다가 이제 내 품을 떠난 지 벌써 6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지근거리에서 지지고 볶으며 살고 있는 친구입니다. 얘도 내 마지막 사업을 말아먹는 데에 크게 기여했으므로 나를 작가의 길로 등 떠미는 결정적인 공을 세운 셈입니다.

 

둘 다 여자입니다. 내 와이프가 이 친구들을 엄청나게 싫어할 것임은 다들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첫 번째 친구는 내 사업 말아먹은 여장부답게 지금 술라웨시 꼬나웨 우따라에 니켈 광산 몇 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워낙 복마전 같은 사업환경 속에서 주먹구구식, 조폭식으로 일하다 보니 업자들에게 뒤통수 맞고 몇 차례 경찰서 유치장에 한 두 달씩 들어가는 경우가 생겨, 그 때마다 술라웨시로 날아가 나름 도움이 되려 애썼습니다. 와이프가 질색 팔색을 하는데도 굳이 내가 이 친구 손을 놓지 못하는 건 이 친구의 니켈광산이 어쩌면 나와 아내의 노후를 위한 보험이 될지 모른다는 측면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친구와 서로 얼굴 안보는 사이가 되면 함께 부대끼며 지낸 20년 넘는 세월이 의미를 잃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의 의미 상당부분이 이 친구와의 관계 속에 녹아 있으니 말이죠.

 

또 다른 한 명은 비록 요즘도 가끔 꼴통짓을 하지만 초창기엔 내가 미용기기 수입판매를 하던 시절 방판업계 선두로 치고 나갈 수 있게 도왔던 발군의 영업 귀재였습니다. 내 회사를 떠날 때에도 내가 이 친구 직장을 알아봐 주었는데 그 사이 법대를 꾸준히 다녀 이제 졸업하면 곧 변호사가 될 판입니다. 미혼모로 아이 둘을 키우면서 회사 다니고 법대 마지막 학기를 다니며 그 사이 로펌 인턴도 마쳤으니 시간을 쪼개 가며 치열하게 살았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막판에 미용사업 하나 말아먹은 것 정도로 이 친구를 미워할 수 없습니다. 솔직히 이미 10년을 넘겨 기울어져 가던 사업에 이 친구가 막타를 친 것뿐입니다.

 

경제적인 형편이 닿지 않아 어쩌면 우리 아이들을 대학에 못보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시절, 발군의 영업력을 보인 이 친구 덕에 우리 아이 둘을 싱가포르와 호주의 대학으로 진학시키고 그 비용을 감담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둘 다 싱가포르에서 직장을 잘 다니고 있죠. 우리 애들이 대학을 마칠 때 난 우리 애들 대학 등록금 반은 이 친구가 내 준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 친구의 두 아이들 학비를 내주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때 그 친구 딸 차차가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차차를 처음 본 건 그보다 훨씬 전이었습니다. 집에서 부모, 동생들과 대판 싸운 엄마가 차차를 데리고 회사 사무실에 재워 달라고 왔던 겁니다. 그때 차차가 한 살 반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이제 고등학교 2학년. 세월이 정말 화살 같습니다.

 

 

차차가 내 생일선물로 낡은 랩톱을 바꿔주겠다며 오래전부터 돈을 모으고 최근에 한 매장에서 랩톱 다운페이먼트를 냈다는 귀띔을 받았습니다. 자기 랩톱을 나한테 빌려 쓰고 있으니 자기 것을 사야 마땅한 상황에 말이죠. 학생이 무슨 돈이 있냐 싶은데, 물론 내가 매달 주는 얼마간의 용돈이 있지만 놀랍게도 차차는 자기가 찍은 이런저런 정물 사진들을 셔터스톡(Shutterstock) 사이트를 통해 판매했는데 그게 생각보다 잘 팔려 한 달에 몇 십 불. 때로는 100불 넘게 수입이 발생햇던 모양입니다. 차차는 어린시절부터 그림이나 조각, 노래, 춤 등 예술 쪽으로 재능을 보였는데 일반 핸드폰에 달린 사진기로 팔릴 만한 사진을 찍는 재주도 있었던 겁니다.

 

내 랩톱, 그러니까 이 글을 치고 있는 이 랩톱은 정말 수명을 다해가고 있는 중인데 부품 나사 하나가 망실되면서 뚜껑을 열고 닫다가 물리적인 파손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프로그램들이 늦어지고 깨지는 등 점점 맛이 가는 중입니다. 물론 새 걸 사려고 마음먹으면 못살 것도 없지만 가족들이나 아이들을 위해 쓰는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데 나를 위해 쓰려면 너무너무 아까운 거에요. 그 와중에 차차가 내 랩톱을 사주려 한다는 얘기를 듣고 심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애기가 말이죠.

 

하지만 아무래도 차차에게 랩톱을 받을 수는 없는 일이라 내가 미리 알아서 사기로 했습니다. 20년 넘게 무거운 랩톱 들고 다니느라 어깨랑 허리에 무리가 갔으니 가벼운 자판 달린 태블릿을 사기로 했어요. 태블릿이 문서편집용 레노버나 에이서보다 비싸더군요.

 

그런데 끌라빠가딩 몰에 가보니 삼성 대리점이 레노베이션에 들어갔고 아르타가딩의 삼성 대리점엔 해당 태블릿 재고가 없다는 겁니다. 신의 계시일까요? 그러다가 BSD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곳 AEON 몰에 마침 삼성 대리점이 있어 거기서 현금카드를 긁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파닌은행에서는 돈이 빠져나갔다는 메시지가 핸드폰으로 들어왔는데 가게에서는 에러가 생겨 댁금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BCA 은행 기계로 긁었는데 결국 돈은 BCA에 묶여 버린 모양이었어요. 파닌은행은 늦어도 45일 이내에 빠져나간 돈이 원상복구될 거라고 했습니다. 한심스러웠지만 그것도 하늘의 뜻이려니 했습니다. 신은 아마도 내가 삼성 태블릿 사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단다.”

내가 이 얘기를 차차에게 한 것은 아무튼 내 랩톱은 내가 살 것이란 생각을 알려주려 했기 때문입니다. 차차는 자신이 랩톱 선수금까지 치르고 내 랩톱을 내 생일에 맞춰 사려 하는 걸 내가 이미 알고 있다는 걸 모릅니다. 난 나중에 내가 돈을 보태 차차 랩톱을 사주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한 게 역효과가 났습니다. 차차는 내가 태블릿을 사려다가 돈을 사기당해 날린 것이라 이해하고 그날 밤 펑펑 울었다고 하더군요. 내 27년차 인도네시아어 실력이 그런 의사소통도 정확히 못한 걸까요?

 

그로부터 2주쯤 지난 오늘 저녁 차차가 와츠앱으로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내 랩톱을 샀다는 겁니다. 레노보(Lenovo)였습니다. 원래 몇 달 후 생일에 맞춰 사려던 것을 내가 급히 새 랩톱이 필요하기 때문에 BSD까지 가서 태블릿을 사려 했던 것이라 생각하고 나름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차차가 어떻게 몇 개월의 시간을 당길 수 있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난 그 문자를 보고 한동안 할 말을 잊었습니다.

 

저 조그만 아이의 작은 가슴 속에 얼마나 뜨거운 진심이 끓어 넘치고 있는 걸까요?

받을 수 없지만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 해 전부터 일 하면서 월급을 받기 시작한 싱가포르의 내 아이들이 옷이나 신발, 가방 같은 것들을 사주기 시작했고 생각해 보니 딸도 델(Dell) 컴퓨터를 사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아직도 고등학생인 차차가 엄마랑 슈퍼마켓에서 식료품을 살 때마다 찍은 과일, 야채 등의 사진들을 셔터스톡을 통해 판매해 오랫동안 모은 돈을 날 위해 썼다니 더욱 마음이 뭉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난 저 아이에게 뭘 해줘야 할까요?

 

2022. 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