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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과 괴담 사이(24)] 너무나 아름다운

beautician 2021. 11. 17. 11:38

너무나 아름다운

 

 

세상엔 불가사의한 일들이 참 많습니다. 거창한 구조물이나 충격적인 현상의 목적이나 이유, 배경, 방법 등을 알 수 없을 때 불가사의라는 말이 붙곤 하는데 이집트 문명의 대피라미드나 바빌론의 공중정원, 스톤헨지, 카타콤, 외계인 같은 것들도 많은 궁금증을 일으키고 상상력을 자아내지만 왜 여자귀신은 모두 미녀들이냐 하는 것만큼 불가사의한 것도 없습니다. 개연성, 또는 확률이라는 게 있는 건데 말이죠.

 

특히 인도네시아 귀신들 중 미인들이 많은 건 잘 이해가 안됩니다. 미인들만 귀신이 된다면 허들이 너무 높은 겁니다. 안쫄 다리에 출몰하는 시티 아리아의 유령은 도시전설 내용대로라면 그 미모로 인해 바타비아의 악명높은 난봉꾼 우이 탐바샤에게 쫓기다 불귀의 객이 되었으니 유령조차 아름다운 자태를 가졌다는 게 사뭇 설득력 있지만 꾼띨아낙과 순델볼롱들은 그 스펙 상 임신 중 또는 출산 중 죽은 여인의 원혼이니 꼭 아름다워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인도네시아 호러퀸들은 어마어마합니다.

 

왼쪽부터 원조 호러퀸 수잔나(Suzzanna), 데위 뻐르식(Dewi Perssik), 루나 마야(Luna Maya)

 

아직도 대체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1970-80년대 신비로운 분위기의 호러퀸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수잔나(Suzzanna)는 <순델볼롱(Sundel Bolong)>(1981), <흑마술여왕(Ratu Ilmu Hitam)>(1981), <니블로롱(Nyi Blorong)>(1982), <산뗏저주(Santet)>(1988) 등 수십 편의 호러영화 주연을 맡았고 수잔나가 세상을 떠나던 2008년부터 데위 뻐르식(Dewi Perssik)이 호러퀸의 바톤을 이어받아 <처녀의 딸리뽀종(Tali Pocong Perawan)>(2008), <빠꾸 꾼띨아낙(Paku Kuntilanak)>(2009) 등에 출연하며 최근까지도 TV와 스크린 양쪽에서 활발히 활동 중입니다. 가장 최근엔 유명 여배우 루나 마야(Luna Maya)가 과거 수잔나를 그대로 본따 <수잔나: 무덤 속에서 숨쉬다(Suzzanna: Bernafas dalam Kubur)>(2018)에 순델볼롱 역으로 출연했는데 모두 미녀 일색이죠.

 

<링>이나 <주온>으로 대변되는 일본 호러영화, <천녀유혼>같은 중국영화에서도 비록 섬뜩한 분장을 했지만 대부분 미녀귀신들이 등장하는데 서구권 영화에서는 최근 <REC>(2007)이나 <마마(Mama)> (2013)에서 보듯 이제 미녀귀신들의 시대는 저물어가는 듯합니다. 심지어 예의 두 영화에서 소름 돋는 귀신 역을 맡은 배우는 여자조차 아니었습니다.

 

2미터 가까운 키와 마르고 긴 팔 다리를 가져 여러 호러영화의 기괴한 귀신이나 괴물들 연기에 자주 동원되는 하비에르 보텟(Javier Botet).<마마>의 엄마귀신도 그가 연기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무속과 괴담 속에 등장하는 여귀(女鬼)들과 여신, 또는 여성성을 가진 마물들은 대부분 천하일색 미녀로 묘사됩니다. 남쪽 바다 마물들의 여왕이자 마타람 왕국의 수호신 니로로키둘(Nyi Roro Kidul)의 군대 사령관 니블로롱(Nyi Blorong)은 원래 거대한 뱀, 이무기이지만 달이 차오를수록 절세미녀의 모습으로 변해가죠. 그리고 여인, 심지어 여성성을 띈 귀신의 아름다움을 논할 때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상당한 수위의 성적 코드가 걸리곤 합니다.

 

눈부신 미모로 각광받은 존재들 중엔 냐이 뿌스뽀쯤뽀코(Nyai Puspo Cempoko-이하 뿌스뽀)라는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부대자루 같은 헐렁한 옷과 헝클어진 머리를 한 보통 꾼띨아낙이나 순델볼롱과 비교할 수 없는, 귀신답지 않은 단정한 옷차림과 화사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중부자바 렘방(Rembang)의 까뽕안(Kapongan) 지역 주민들 상당수가 뿌스뽀와의 혼인을 통한 재물주술의 메커니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뿌스뽀의 것이라고 알려져 주민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오래된 무덤이 하나 있는데 이곳에 지아라(ziarah), 즉 순례를 오는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 무덤엔 초자연적 기운이 넘쳐 흘러 소원을 빌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재물이 불어나는 행운을 얻게 된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육신은 그곳에 묻혀 있지만 뿌스뽀의 혼령은 아직도 렘방 지역을 떠돌며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죠.

  

보통의 재물주술이 가족 또는 지인들의 생명을 제물로 요구하거나 죽은 후 특정 존재의 권속으로 영겁을 지내야 하는 것과 달리 뿌스뽀는 바람둥이 남자라면 얼씨구나 할 획기적인 조건을 요구합니다. 그녀를 통해 부자가 되려는 남자들은 정해진 날에 반드시 뿌스뽀와 격정의 밤을 보내야 한다는 겁니다. 그녀는 보통은 끌리원(Kliwon)의 금요일, 즉 자바의 5요일 중 끌리원 요일과 겹치는 목요일 밤에 남자들에게 찾아옵니다. 같은 날 복수의 장소에 동시에 등장하는 것은 흔히 신들이 갖는 무소부재(無所不在)의 속성이란 점에서 뿌스뽀는 어느 정도 신성을 띄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녀와 재물주술의 맹약을 맺은 남자들은 뿌스뽀의 남편이 되어 아름답고 늘신한 미녀의 모습으로 현신한 그녀의 색정을 충족시켜 줘야 합니다. 따라서 이 재물주술을 추종하는 것은 비단 부자가 되는 것뿐만 아니라 비록 귀신의 현신이긴 하지만 천하일색 미인을 품는다는 전세계 남성 공통의 로망을 이루는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몰리지 않을 리 없습니다.

 

냐이 뿌스뽀쯤뽀코는 아마도 이런 모습?;

 

이 주술을 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다른 조건들도 있습니다. 뿌스뽀와의 육체관계는 오직 당사자만의 비밀이어야 하므로 반드시 방 하나를 특별히 구별해 정화하고 다른 사람이 들어가거나 들여다볼 수 없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시장에서 파는 군것질거리들과 향기로운 꽃잎들, 어린 야자 등을 공양하고 벌꿀향을 매일 피워야 하며 이 공양을 절대 잊거나 빠뜨려서는 안됩니다. 귀신과의 거래는 늘 세세한 절차를 일관성 있게 따르는 게 중요합니다.

 

이런 비밀스러움 때문에 냐이 뿌스뽀쯤뽀코의 재물주술의 후기가 나오긴 힘들지만 그런 정황이나 세간에 떠도는 제3자의 목격담은 간혹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동부자바 뚜반(Tuban) 지역에 사는 부자 나시르는 예전 가난한 농부였던 시절 까뽕안 지역으로 와 뿌스뽀의 재물주술을 접한 후 고향에 돌아가 사업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여태 결혼도 하지 않는 이유가 뿌스뽀와의 맹약에 매여 있기 때문이라 수근거립니다. 나시르의 신비로운 비밀이 새나간 것은 그의 가정부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나시르가 자신은 물론 다른 가족들조차 절대 들이지 않는 특별한 방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게다가 끌리원의 목요일 밤이 깊으면 그 방에서 어떤 여인의 간드러진 교성이 흘러나오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가정부가 열쇠구멍으로 방 안을 살짝 들여다보았는데 집주인 나시르가 방 안에서 어떤 아름다운 여인과 한창 관계를 갖던 중이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여인이 뿌스뽀일 거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그날 나시르의 집에 찾아온 외부인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이 들어왔다면 가정부 눈에 띄지 않을 리 없었습니다. 그러자 모든 상황의 앞뒤가 착착 맞아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나시르가 매일 작은 소쿠리에 담아 그 방 앞에 놓아두는 것은 뿌스뽀가 요구하는 공양물이었고 혼인적령기를 한참 지난 그가 얼마든지 부인을 맞을 만큼 충분히 부유했는데도 고집스럽게 총각으로 지내는 것, 그리고 가끔 정신이 나간 듯 허공에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모습, 뭘 물어봐도 엉뚱한 대답을 하기 일쑤여서 대화다운 대화가 어려운 상태……, 그것은 뿌스뽀 재물주술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증세였던 것입니다.

 

뿌스뽀는 도대체 얼마나 아름다운 걸까요? 그건 누구도 증명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녀의 이름이 이미 어느 정도 암시하는 바가 있습니다. 뿌스뽀쯤뽀코의 자바식 표기인 Puspa Cempaka는 그 자체로 마그놀리아의 일종인 ‘쯤빠까 꽃’을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마그놀리아 참파카(Magnolia Champaca)

 

그런데 인도네시아 전국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영적 존재는 뿌스뽀보다는 술라웨시 떵가라(Sulawesi Tenggara 술라웨시 동남부) 지역의 깐돌레(Kandole)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 버전들 중 하나에 따르면 술라웨시에서도 여인들이 사회적 약자로서 겁탈당하거나 심지어 살해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그렇게 산자락이나 수로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여성들의 시신에서 발생한 깐돌레 유령이 복수를 하기 위해 깊은 밤 정글과 마을 주변에 출몰한다는 식으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흔한 꾼띨아낙의 에피소드들과 별반 다를 바 없죠.

 

하지만 술라웨시 동남부 똘라키 부족(Suku Tolaki)들 사이에서 수백 년간 구전되어 내려오는 또 다른 전설은 조금은 다른 목적으로 남자들을 유혹해 결국 목숨을 빼앗고 마는 깐돌레 유령((Hantu Kandole)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 전설에 따르면 깐돌레는 사실 죽은 여인의 유령이 아니라 숲 속에 집단적으로 깃들어 있는 일종의 진(Jin), 즉 도깨비나 요괴라는 설정으로 시작됩니다. 깐돌레는 원래 여성성을 가진 진으로 남성 진들과 거리를 두고 깐돌레들끼리 무리를 이루는데 이는 남성 진들에게 대항하고 오히려 그들을 지배할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체 수를 늘리려면 부득이 남성 진과 육체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결혼정보센터를 통해 건전한 교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 진을 납치해 노예로 삼거나 남성 진을 유혹해 속이거나 복속시키는 것입니다. 육체관계를 통해 집단을 증식시킨다는 점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개념의 귀신이 아니란 것이 분명해집니다. 일견 아마조네스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똘라끼(Tolaki)의 깐돌레를 검색하면 나오는 이미지;

 

하지만 남성 진을 납치하거나 복속시키는 게 깐돌레로서도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므로 좀 더 쉬운 상대를 찾는데 그게 인간 남성이며 그 사이에 두꾼, 즉 무당/영매가 개입합니다. 본격적인 두꾼들 중엔 수십 명의 귀신들과 혼인해 그들을 부린다는 이들도 있고 특정 대상에겐 복수심을 불태우지만 일반인들에겐 넉넉한 재물과 운수를 선사한다는 순델볼롱과 영혼결혼을 주선하기도 합니다. 물론 유료 서비스입니다. 뿌스뽀 재물주술을 연결해 주는 것도 두꾼이나 꾼쩬의 역할이고 그들이 깐돌레도 주선합니다. 오히려 인간이 깐돌레를 유혹해 길들일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깐돌레를 길들이는 방법은 두꾼들만의 영업비밀입니다.

 

두꾼이 길들이지 않은 자연상태의 깐돌레는 충분히 무서운 존재입니다. 깐돌레는 타고난 매력으로 남자를 홀려 깊은 정글 속 자기들의 왕국으로 데려갑니다. 거기서 깐돌레가 본성을 드러내는데 깐돌레와 몸을 섞는 동안 남자는 황홀경의 절정에서 자신의 생명이 스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의 목숨이 깐돌레와의 관계를 맺는 대가, 즉 제물이라는 것을 말이죠. 하지만 깐돌레는 남자가 그걸 깨달아도 결코 멈추고 싶지 않을 만큼 극강의 황홀경을 선사한다고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을 만큼 남자를 눌러 놓고 간드러진 웃음을 웃으며 몸 위로 올라오는 가위 귀신을 연상시킵니다.

 

두꾼이 주선하는 깐돌레는 좀 안전할까요? 아름답고 젊은 여인으로 현신한 모습에 남자로서는 깐돌레가 귀신이든 진이든 더 이상 아무 상관이 없게 된다는 지점에서 치명적으로 홀린다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하지만 남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지는 않도록 길들여져 있다는 것이 다른 점입니다. 두꾼들은 못하는 게 없습니다. 아름다운 얼굴과 흠잡을 데 없는 몸매를 가진 여인을 위해 남자들은 두꾼에게 비싼 사례를 하는 것도 마다치 않습니다. 깐돌레와 결혼하면 그녀를 정식으로 부인 중 하나로 여기고 그녀만을 위한 방 하나를 따로 구별해 정결히 꾸며야 한다는 점에서 뿌스뽀 재물주술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누군가의 이상형, 또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현신하는 깐돌레도 인간이 자신을 해하려 할 경우, 또는 남성이 자신을 떼어 놓으려 할 때엔 더욱 치명적이고도 무시무시한 존재로 돌변합니다.

 

여자가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되는 남자들 사고방식이 일견 한심스럽고 귀신들조차 미모 품평을 받아야 하는 세계관 속에서 한편으론 뿌스뽀나 깐돌레도 고달프겠다 싶습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인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서구적인 혼혈들이 TV에 자주 등장하는 것처럼 인도네시아 미스 귀신 콘테스트엔 서양여인들의 유령들도 자주 등장합니다. 길고 길었던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서양인 유령들이 인도네시아 전역 곳곳에 뿌리내렸는데 앞서 연재에서도 반둥 지역의 루마끈땅이나 스마랑의 라왕세우 (Lawang Sewu) 건물에서 목격된 서양인 귀신들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자카르타 북부 해상유원지 뿔라우스리부(Pulau Seribu) 제도에서 뭍에 가장 가까운 온러스트 섬에서는 마리아 판 드 벨데(Maria Van De Velde)의 유령이 자주 목격됩니다.

 

지도 상 왼쪽 빨간 점이 온러스트 섬(왼쪽),&amp;nbsp;섬에 남아 있는 옛 요새 유적;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가 1610년 선박 수리와 건조를 위해 자야카르타 왕국으로부터 사용허가를 받은 온러스트 섬에, 초창기엔 작은 조선소와 수리용 도크, 창고들이 지어졌고 1800년대엔 요새가 지어질 만큼 바타비아의 중요한 해상관문이었고 그 기능을 보조하기 위해 비다다리 섬, 찌삐르 섬, 끌로르 섬이 개발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1883년 바타비아 북부`해안에 딴중뿌리옥(Tanjung Priok) 항구가 건설되면서 갑작스럽게 그 역할이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바타비아로 들어오는 것들이 거쳐가던 온러스트 섬엔 이제 바타비아가 품기 곤란한 것들을 내버리는 곳으로 성격이 바뀌게 된 것이죠.

 

그래서 1911년에서 1933년 사이엔 이곳에 결핵 요양소가 운영되었고 메카 하지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순례자들의 격리검역소도 있었습니다. 명색은 검역소였지만 속사정은 좀 달랐습니다. 당시 네덜란드 동인도 정부는 하지 순례를 마친 이들이 곧장 귀국하지 않고 대개 사우디 아라비아 최고 울라마들에게 3개월 정도 종교공부를 하는 관행에 주목했는데 거기서 순레자들이 자신과 이슬람, 그리고 세상에 눈을 뜨고 안목을 넓히는 과정에서 식민정부에 저항하는 마음이 싹트게 될까 우려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위험하고 불순한 사상을 지닌 이들이 하지 순례에서 돌아오면 다양한 구실을 붙여 살해하기도 했는데 치료 명목으로 독극물을 주사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검역소에서 무사히 나와 집으로 돌아간 순례자들에게도 감시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식민정부는 그들의 이름 앞에 ‘하지(Haji)’라는 명칭을 붙여 구분하고 감시를 용이하게 했습니다. 그것이 지금도 메카 순례를 다녀온 사람들 이름 앞에 ‘하지’를 붙여 부르는 전통의 기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던 독일인들이 이 곳에 수용되었다가 1942년 일본군이 자바섬에 들어온 후엔 흉악범들과 정치범 수용소로 바뀌었고 태평양전쟁과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이 모두 끝난 후 1960년대 초까지는 나병을 비롯한 각종 전염병 환자들의 격리병원으로, 1960년-1965년 기간에는 노숙자와 거지들의 보호소 역할도 했습니다. 요컨대 자카르타에서 벌어진 문제들을 버리는 투기장소처럼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열대 풍토병을 견디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네덜란드 인들과 인도네시아 흉악범, 순례자, 감염병자들의 무덤이 즐비한 온러스트 섬에는 정부군에게 붙잡혀 처형당한 다룰이슬람 반군지도자 까르토수위르요(Kartosoewirjo)의 무덤도 있습니다.

 

다룰이슬람 지도자 까르토수위르요의 처형 직전 장면

 

그 무덤들 사이에 1693년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나 1721년 11월 19일 온러스트에서 사망한 마리아의 무덤이 있습니다. 쓰러진 묘비엔 그녀의 죽음을 탄식하는 시가 새겨져 있지만 날씨가 흐린 날이나 어스름이 내리는 시간이면 그 묘비가 원래 서 있던 자신의 무덤을 찾아 묘지를 배회하는 젊은 유럽 여인의 유령이 주민들 눈에 띄곤 합니다.

 

마리아는 네덜란드에서 끝내 오지 않은 연인을 기다리다가 상심한 끝에 웨딩드레스를 차려 입은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전해집니다. 두 사람의 결혼을 용납할 수 없었던 마리아의 부모가 손을 써 마리아의 연인이 전쟁에 나가 죽도록 손을 썼다고 하죠. 그러나 마리아는 실제 자살한 것이 아니라 당시 이 섬을 덮친 페스트에 걸려 사망했다고도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 28세의 나이로 죽은 마리아의 삶의 흔적은 묘지를 떠도는 그녀의 유령만큼이나 희미합니다. 그녀의 묘비에도 사망 원인을 짐작하게 할 만한 내용은 전혀 적혀 있지 않으니까요.

 

안쫄다리 시티 아리아의 유령처럼 복수심에 불타오르지도 않고 뿌스뽀나 깐돌레처럼 남자의 몸을 탐하지도 않는 마리아의 유령은 자카르타 앞바다 작은 섬 위에서 오늘도 오랜 세월동안 떠나온 고향과 돌아오지 않는 애인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겠죠.

 

서구의 미녀귀신들 모음

 

가끔은 어스름이 깔리는 온러스트 섬의 묘지 모퉁이 또는 요새터 자리에 마리아와 까르토수위르요의 유령이 나란히 앉아 노을이 사그라져 가는 어두운 수평선을 바라보는 장면을 떠올려보곤 합니다. 뼛속까지 민족주의자였던 까르토수위르요로서는 마리아보다는 뿌스뽀나 깐돌레가 더욱 정겨운 상대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300년간 온러스트 섬에서 떠돌던 정복자의 아름다운 딸과 평생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위해 네덜란드와 싸우고, 나중엔 종교적 순결을 위해 수카르노의 인도네시아 정부와 싸우다 마침내 총살로 생을 마감한 무슬림 노전사의 원혼이 지금쯤 어떤 식으로든 화해에 이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