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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러스트 섬(Pulau Onrust)의 괴담

beautician 2021. 11. 14. 11:58

자카르타 앞 바다의 온러스트섬 이야기

 

온러스트 섬(Pulau Onrust)의 검역소 터  

 

온러스트 섬(Pulau Onrust)은 ‘천 개의 섬’이란 뜻을 가진 해양 관광지 ‘뿔라우 스리부(Pulau Seribu)’ 군도 지역에 속한다. 비다다리 섬(Pulau Bidadari)과도 지척이다. 자카르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해상의 온러스트 섬은 흥미로운 역사와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섬 이름인 온러스트(Onrust)는 '절대 쉬지 않는다’ 또는 영어로 'Unrest'를 의미하는 네덜란드어에서 따왔다고도 하고 섬 주인이었던 ​​네덜란드 귀족 바스 온러스트 코넬리스 판데르 팔크(Baas Onrust Cornelis van der Walck)에서 따왔다고도 한다.

 

1911년에서 1933년 사이엔 이곳에 결핵 요양소가 있었고 메카 하지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순례자들의 격리검역소도 있었다. 명색은 검역소였지만 사실 이 시설이 설치된 속사정은 좀 달랐다. 당시 네덜란드 동인도 정부는 하지 순례를 마친 이들이 곧장 귀국하지 않고 대개 사우디 아라비아 최고 울라마들에게 3개월 정도 종교공부를 하는 관행에 주목했는데 거기서 순레자들이 자신과 이슬람, 그리고 세상에 눈을 뜨고 안목을 넓히는 과정에서 식민정부에 저항하려는 마음이 싹트게 될까 우려했던 것이다. 그래서 불순하거나 위험한 사상을 지닌 이들이 하지 순례에서 돌아오면 다양한 구실을 붙여 살해했는데 치료 명목으로 독극물을 주사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역사에 남아 있다.

 

검역소에서 무사히 나와 집으로 돌아간 순례자들에게도 감시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식민정부는 그들의 이름 앞에 ‘하지(Haji)’라는 명칭을 붙여 구분하고 감시를 용이하게 했는데 그것이 지금도 메카 순례를 다녀온 사람들 이름 앞에 ‘하지’를 붙여 부르는 전통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바타비아로 들어오던 배들은 일단 먼저 온러스트 섬을 기항했다고 전한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이 섬을 ‘선박의 섬’이란 뜻인 뿔라우 까빨(Pulau Kapal)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1933년부터 1940년 사이에 이 섬은 ‘일곱 주 선박’(Kapan Zeven Provincien) 사건에 연루된 반란자들 수용시설로 사용되었고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1940년에는 인도네시아 내에서 나찌를 추종하는 것으로 알려진 독일인들이 이 곳에 수용되었다.

 

이후 태평양전쟁에서 승승장구하던 일본군이 1942년 자바섬에 들어와 바타비아를 점령하자 이 섬은 이제 흉악범들과 정치범들을 수용했는데 그들 중엔 훗날 인도네시아 공산당 당수가 되는 D.N 아이딧(D.N. Aidit)도 있었다.

 

태평양전쟁과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이 끝난 후 1960년대 초까지 온러스트섬은 이제 나병을 비롯한 각종 전염병 환자들의 격리병원으로 사용되었고 1960년-1965년 기간에는 노숙자와 거지들의 보호소 역할도 했다. 이 섬엔 군사훈련을 위한 시설도 지어졌다.

 

대체로 사회로부터 버려진 사람들이 수용되던 이 섬은 나중에 섬 자체가 사람들에게 버려져 1968년까지 주인 없는 무인도가 되었지만 이후 경찰청 승인을 받은 사람들이 대대적으로 이 섬을 파헤쳐 건축자재를 채취해 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72년에 이르러서야 이 섬의 역사적 가치를 자카르타 주지사가 이곳을 역사적인 섬으로 지정하는 법령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이 섬에는 인도네시아 국기가 꼽힌 이름 없는 무덤들이 많이 있는데 수카르노 시절 처형당한 다룰이슬람/인도네시아 이슬람군대(DI/TII) 지도자 까르토수위르요(Kartosoewirjo)의 무덤도 이곳에 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무덤은 일본군 강점기 시절 처형된 사람들의 것이라고 한다.

 

다룰이슬람 지도자 까르토수위르요의 처형 직전 장면  

 

이 섬에는 네덜란드인들의 묘지도 조정되어 있는데 그 한 가운데엔 아름드리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온러스트 섬에는 많은 괴담과 전설이 전해지는데 그중 하나가 이 묘지 근처에서 목격되는 마리아 판 더 펠데(Maria Van de Velde)의 유령이다. 전설에 따르며 마리아는 네덜란드에서 끝내 오지 않은 연인을 기다리다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두 사람의 결혼을 용납할 수 없었던 마리아의 부모가 손을 써 마리아의 연인이 전쟁에 나가 죽도록 손을 썼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마리아는 자살한 것이 아니라 당시 이 섬을 덮친 페스트에 걸려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 마리아의 유령이 특정한 날에 무덤 인근에서 종종 목격된다고 한다.

 

출처:

https://www.dream.co.id/jejak/kisah-pulau-onrust-karantina-haji-hingga-misteri-hantu-maria-150827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