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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과 괴담 사이 (16)] 이웃의 재물을 훔치는 아기 악마

beautician 2021. 7. 22. 11:21

이웃의 재물을 훔치는 아기 악마

 

 

인도네시아에서는 어떤 무시무시한 귀신도 돈벌이에 동원된다는 얘기를 전편에서 몇 차례 했습니다. 행운과 재물을 가져오는 건드루어 털 한 올을 뽑으려고 한 밤 중 묘지에서 발가벗고 까마귀 고기를 굽는다거나 부자가 되려고 두꾼을 통해 무시무시한 여귀 순델볼롱과 영혼결혼식을 한다거나 하는 얘기 말이죠.

 

부자가 되는 주술은 어느 나라에나 있겠지만 인도네시아에도 뻐수기한(Pesugiihan)이라 하여 그 끝을 알 수 없는 광대한 재물주술(財物呪術)의 세계가 펼쳐져 있습니다. 귀신이나 요괴 또는 흑마술, 백마술을 이용해 부자가 되려는 시도입니다. 인도네시아에 살았다면 주변에, 특히 화교들 중에 수기(Sugih)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꼭 한 두 명 정도 있을 겁니다. 부자가 되라는 부모의 염원을 아들의 이름에 ‘부(富’), 즉 ‘재물’이란 의미로 노골적으로 담은 겁니다.

 

그래서 어쩌면 재물주술 중 최소한 그 일부는 몇 세기 전 중국인들이 인도네시아에 들어올 때 함께 전래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오늘 다룰 재물주술의 대표 악마, 뚜율(tuyul)과 비슷한 형태를 중국 복건성 지방에서 유래한 뀌키아(Kwee Kia)에서도 찾을 수 있거든요. 아기 시체의 일부를 말린 후 주술로 되살아나게 한 아기 요괴가 사람들의 재물을 훔쳐온다는 얘기가 뚜율과 많이 닮았습니다. 그 뀌키아가 인도네시아까지 남하해 뚜율이 되기까지 여러 지역을 거쳐오면서 태국에선 꼬만통 (남자뚜율), 꼬만라이(여자뚜율), 필리핀에선 티야낙(Tiyanak), 캄보디아에선 꼬헨크로(Cohen Kroh), 말레이시아에선 또욜(toyo)이란 형태로 현지 전설과 괴담 속에 남게 된 것입니다.

 

재물주술 전용 귀신으로 뚜율 말고도 바비응예뻿(babi ngepet)와 부토이조(buto ijo) 등이 있는데 이들 프로필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분 뚜율 바비응예뻿 부토이조
인상착의
최초 접신 두꾼이 미리 잡아놓은
뚜율을 구매.
두꾼의 강신주술로 접신 두꾼의 강신주술로 접신
재산증식 이웃 재산 절취 이웃 재산 절취 후손의 재산을 당겨옴.
구체방식 뚜율이 직접 이웃집에 들어가 절도행각. 밀폐된 금고에도 침투 가능. 인간이 돼지로 변해 이웃집 담장에 몸을 벅벅 긁으면 그 집 재물이 내 주머니에 저절로 들어옴. 저절로 수입이 생기거나 거래 상대방이 스스로 양보하도록 조화를 부림
증식규모 티끌 모아 태산 티끌 모아 태산 한방에 인생역전
제물 일가의 한 여인이 피를 자신의 인과율을 공양 자신이나 친인척의 목숨 자신이나 친인척의 목숨
재산수호능력 없음 (암놈은 가능) 없음 있음
특기사항 한번 붙으면 떨어뜨리기 힘들어 상속되기도 함. 집안에 신생아가 태어날 무렵 질투에 눈이 먼 뚜율이 난장판을 침. 돼지로 변해 있는 동안 촛불을 지키며 뒷배를 봐줄 파트너 필요. 돼지가 잡혀 죽으면 시전자도 죽음. 가장 강력하며 약점이 별로 없음. 공물을 제때 바치지 않으면 주인을 해침.

 

뚜율은 어떻게 생겨날까?

뚜율 괴담은 주로 자바지역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키 작은 대머리 아이의 모습으로 현신하는데 때로는 은색이나 녹색 피부를 가졌습니다. 특정 지역의 숲 속에서 우두머리도 있고 나름 규율도 가진 조직과 사회를 이루어 서식한다고 묘사하는 지점에서 귀신이라기보다는 우리와 존재방식이 다른 정글 속 미지의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영안이 트인 두꾼이 그런 숲에 들어가 뚜율들을 잡아온다고 주장하죠.

 

하지만 또 일각에서는 유산된 태아나 출산 중 사망한 아이의 혼에서 태어나거나 두꾼이 낙태한 아기의 무덤에서 훔쳐온 시신을 재료로 뚜율을 만들어낸다고도 믿습니다. 그래서 그 성격도 어린 아이처럼 종잡을 수 없고 놀기 좋아하며 쉽게 딴 데 정신을 빼앗기기도 한다는 거죠.

 

하지만 어느 쪽이 사실이든 일반인이 뚜율을 구하려면 어차피 두꾼에게 사오는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은 놀랍게도 인터넷 쇼핑몰에서 뚜율을 장바구니에 담아 손쉽게 문 앞까지 배달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저주술 두꾼들이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열어놓고 당신의 원수를 반드시 죽여주겠다는 광고를 내는 것처럼 재물주술 전문 두꾼들도 온갖 종류의 부적과 신물들을 온라인에서 파는데 때로는 뚜율을 파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웹사이트를 살짝 들여다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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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율은 돈이나 패물을 훔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존재입니다. 본인이 내놓는 이 뚜율은 동부자바의 시도물요 지방에서 잡은 아주 특별한 종류랍니다.  매우 작은 이 뚜율의 키는 5-6cm 정도인데 영안이 트인 사람들은 볼 수도 있고 심지어 얘기도 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직 주인 외에 다른 사람들 눈엔 절대 보이지 않아요.  

 

사육방법도 매우 간단해요. 이 뚜율은 아주 튼튼해서 사람을 번거롭게 만들지도 않고 여자들 젖을 빨지도 않습니다. 본인이 가진 이 뚜율은 놀거나 쉴, 방 하나만 주면 주인에게 충성을 다합니다. 

 

보통의 뚜율이라면 5백만 루피아(약 39만2000원)에 양도할 수 있지만 두개의 어금니를 가진 이 메멧뚜율(Memet Tuyul)은 영리하고 민첩해 다른 뚜율보다 몇 배의 재물을 훔쳐올 수 있습니다. 이 메멧뚜율이 비싼 이유는 전국을 통틀어 한 줌도 안되는, 오직 고위마법을 시전할 수 있는 영험한 두꾼들만이 잡을 수 있는 종류이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제시하는 인도금은 1,500만 루피아(약 118만원)입니다.

 

뚜율은 그 가치만큼의 일을 합니다. 예를 들어 만원에 사온 뚜율이 한 번 나가서 훔쳐오는 재물의 가치가 딱 만원 어치입니다. 100만원어치를 훔쳐오려면 100번 출동을 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저 메멧뚜율처럼 118만원짜리를 사오면 한 번에 자기 몸값만큼의 돈과 패물을 훔쳐오니 가성비가 짱짱한 거죠. 그러니 일하긴 싫으면서도 돈은 많이 벌고 싶은 인간들이 뚜율에게 얼마나 군침을 흘리겠어요? 이런 뚜율 괴담은 자바 전역에서 넘쳐납니다.

 

뚜율 아트 모음  

 

뚜율이 가진 빨간 눈은 마치 적외선탐지기나 뢴트겐 사진기처럼 금고 안, 벽 너머의 돈과 패물을 찾아내 그 안으로 스며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뚜율에 의한 도난사건이라 여겨지는 범죄현장엔 밀폐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장난스럽게 뛰어논 것 같은 손자국, 발자국들이 먼지 쌓인 바닥과 벽에서 잔뜩 발견되는 거죠. 하지만 어쩌면 그 모든 묘사가 불가사의한 도난사건이 일어나면 어렵게 범인을 잡기보다 손쉽게 뚜율의 소행으로 돌리려 했던 수사당국의 사전 포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주인이 직접 뚜율을 목끈으로 묶어 해지기 직전 전통시장 근처로 산책을 나가 특정 장소에 앉아 쉬는 척 딴청을 부리면 그 사이 뚜율은 시장을 돌아다니며 장사꾼들 지갑에서 지폐를 몇 장씩 빼 오기도 합니다. 어차피 뚜율은 일반 사람들 눈엔 보이지 않으니까요. 마그립 저녁기도시간 아잔이 울려 퍼질 때면 주인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뚜율이 훔쳐온 돈을 챙겨 유유히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니 일반인들이 뚜율이나 뚜율을 부리는 주인을 얼마나 혐오할 지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동네에서 작은 돈이 자주 없어지면 그 동네에 뚜율이 있다는 소리가 나오고 어떤 변변한 직업도 없는 사람이 집을 짓고 새 차를 뽑으면 사람들은 필시 그가 뚜율을 키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뚜율을 부리는 사람으로 몰린 이웃이 마을 사람들에게 위협을 당하거나 린치를 당하는 경우도 가끔 벌어집니다.

 

 

뚜율 퇴치법

한편 뚜율을 막는 나름의 방법도 있습니다. 농이나 금고에 잘 보관해 둔 돈가방이나 지폐봉투 밑에 바늘을 넣어 두는 겁니다. 그러면 바늘에 찔릴까 무서워 뚜율이 돈을 훔쳐가지 못하거든요. 사실 날카로운 것을 귀신들이 무서워한다는 속설이 꾼띨아낙, 빨라식, 웨웨곰벨 등의 경우에도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어쩌면 날카로운 쇠붙이를 지니거나 요처에 놓아두는 것이 귀신이나 마물의 접근을 막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금고에 녹두콩을 뿌려두면 뚜율이 들어와 돈을 훔치러 온 것을 잊고 녹두콩을 가지고 놀다가 돈 대신 녹두콩을 가져간다고 합니다. 이렇게 콩이나 구슬, 엮어 매달아 놓은 마늘 같은 것과 놀다가 자기가 뭐하러 그 집에 왔는지 쉽게 잊어버리는 것은 놀기 좋아하는 뚜율의 특성 때문이죠. 살아 있는 게를 풀어 놓아도 뚜율은 게와 노는 데 정신이 팔려 도둑질하러 왔다는 사실을 까먹고 맙니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두려워해 돈을 거울 밑에 놓아 두는 것도 효과적인 뚜율 퇴치법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뚜율이 잡히는 소동이 벌어집니다. 잡힌 뚜율을 구경하러 동네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심지어 TV 뉴스 취재팀이 달려오기도 합니다. 사실 뚜율만이 아닙니다. 현지 매체에서 온갖 종류의 귀신이나 마물들이 사람들에게 잡혔다는 기사가 나곤 합니다. 인도네시아 귀신들은 의외로 잘 잡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뚜율을 잡아넣었다는 페트병 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안이 열린 사람들만 귀신을 볼 수 있으니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엔 스스로 귀신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 그 빈 페트병을 보며 서로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관입니다.

 

“이 놈은 몸 길이가 30센티미터쯤 되고 옷을 입고 있는 남자 뚜율이네요. 머리칼이 길고….”

“아니, 얘는 대머리에 손톱이 긴 놈이에요. 피부색은 회색이고요.”

무슨 코미디 만담가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뚜율 키우기

아무튼 뚜율을 한 마리 장만했다고 해서 당장 이웃의 재물을 훔칠 수 있게 되는 건 아닙니다. 우선 주종관계를 확립하기 위해 손이 많이 갑니다. 뚜율은 특별한 인형이나 시체기름을 담은 단지 속에 깃든 상태로 도착하는데 제사를 지내 듯 인형이나 단지 앞에 향을 태우거나 양초를 켜고 정기적으로 주인의 피를 몇 방울씩 떨어뜨려 줘야 합니다.

 

뚜율은 집에 온 후 시간이 지날수록 그 존재감이 점점 커져 피부로 느껴질 정도가 됩니다. 뚜율을 판 두꾼은 밥을 먹게 하는 주문, 정보를 찾아오게 하는 주문, 어떤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기본주문들은 물론 말을 잘 듣지 않을 때 ‘매를 맞도록 하는 주문’도 가르쳐 줍니다. 주종관계를 분명히 하기위한 방편이죠. 그러나 뚜율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뚜율은 여러 불미스러운 문제들을 일으킨 끝에 결국 반품되고 마는데 거기서 뚜율이 자기 주인에 대해 온갖 문제들을 두꾼에게 시시콜콜 다 고자질한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뚜율은 남자아이로 묘사되지만 여자 뚜율도 있습니다. 여자 뚜율은 일반적으로 주인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구축하는데 그 관계는 강한 소유욕과 불타는 질투심으로 변해 때로는 관리할 수 없을 정도로 걷잡을 수 없게 되곤 합니다. 고집도 세서 뭔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재론의 여지가 없어요. 그들은 남자 뚜율처럼 돈이나 패물을 훔쳐오는 일은 하지 않고 가솔을 지키고 악운이 집안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합니다. 그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돈이 굴러 들어오길 바라며 뚜율을 사들인 사람 입장에선 당장 돈이 안되니 쓸모가 적고 통제하기만 어렵다고 생각하게 되죠. 그게 여자 뚜율들이 업계에서 각광받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기본적으로 귀신을 부리는 일은 반드시 제물이 필요한 법이고 뚜율의 경우엔 최소한 집안 여인 한 명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가장 일반적인 뚜율은 입술이 세로방향으로 난 놈들입니다. 주인이 이 뚜율을 자기 아들처럼 애지중지하여 집안 처녀들의 젖을 빨게 해줍니다. 정작 그 여인들이 이를 자각하거나 동의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뚜율을 부리는 집안의 딸은 좀처럼 혼처가 나서지 않는데 그건 뚜율 때문입니다. 뚜율의 기가 커질수록 처녀의 운은 점점 더 막히게 되고 뚜율은 그 처녀를 평생 자기와 놀아줄 누나처럼 여기거나 심지어 특정 조건 아래에선 성적 대상으로 여기게 되는데 그것이 처녀의 인과율을 더욱 악화시킵니다. 결국 집안의 여인, 즉 뚜율 주인의 아내나 여동생 또는 딸의 운명이 뚜율을 부리기 위한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기록에 따르면 뚜율에게 일을 시킬 때마다, 또는 일주일에 2-3회 집안 여인이 뚜율에게 수유를 해야 합니다. 뚜율의 방에 여인을 혼자 두면 뚜율이 어린아이 모습으로 현신해 여인의 젖을 빱니다.  하지만 사실은 뚜율이 날카로운 어금니로 젖꼭지를 깨물어 배가 부르도록 피를 마시는 것이죠. 주인이 더 큰 재물을 훔쳐올 것을 요구하면 뚜율 역시 더 큰 제물을 요구하여 건장한 청년의 모습으로 현신해 주인의 아내를 품습니다. 그래서 뚜율을 부려 부자가 되려는 사람은 이웃의 재물을 탐하는 악의와 이기심, 그리고 집안 여인을 기꺼이 뚜율의 보모나 노리개로 내주는 저열한 인성을 가졌다고 간주해도 됩니다. 뚜율을 부리는 사람들은 사실상 인간쓰레기입니다.

 

어떤 기록에서는 새벽녘에 뚜율이 주인 부부가 사는 방에 들어와 주인 아내의 엄지발가락을 깨물어 그녀가 깨어날 때까지 피를 빤다고도 합니다. 또 다른 전승에서는 뚜율이 담긴 항아리에 매월 14일 주인이 피를 몇 방울씩 떨어뜨려 줘야 뚜율이 더 빨라지고 기운도 세어진다고 합니다. 뚜율이 언제나 천방지축 돌아다니는 것 같지만 보통 때에는 어두운 곳에 보관하는 특별한 항아리에 깃들어 있거든요. 

 

뚜율은 주인을 보호하고 주인이 시키는 바를 충실히 수행하며 심지어 뚜율로 만들 수 있는 아기영혼을 잡아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인 집안에 아기가 태어날 즈음엔 질투심이 극에 달해 주인에게 해를 끼치기 시작하는데 물건들이 없어지고 각종 악운들이 겹치게 됩니다. 그래서 뚜율의 주인은 뚜율이 질투심을 품지 않도록 자식처럼 지극정성으로 돌봐야 합니다. 뚜율은 혼자 남겨지는 것도 싫어해 주인과 같은 식탁에서 같은 음식을 함께 먹어야 하며 주인이 밥 주는 것을 잊으면 주인의 몸에 멍자국을 남겨 경고합니다. 그리고 뚜율에게 제공되었던 식사는 매우 빨리 부패합니다. 그건 제사상에 올려 귀신이 먼저 먹은 음식이 빨리 상한다는 우리 통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입니다.

 

이웃에겐 분명한 악의를 숨기고 있는 주인이 뚜율에게만은 성심을 다해야 한다는 지점은 사뭇 이율배반적입니다. 뚜율이 입을 옷을 사서 찻장 안에 넣어 두어야 하고 어떤 일을 잘 수행한 상으로 침대 밑에서 장남감, 구슬, 장남감 자동차 등을 넣어 두면 뚜율이 와서 가지고 놉니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놈도 있고요. 뚜율의 그런 유아적 특징을 이용해 어떤 집에 뚜율이 있는가를 알아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 집 앞에 성냥갑이나 장난감 자동차들을 일렬로 배열해 놓는 것입니다. 뚜율이 있다면 그것들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뚜율이 그것들을 가지고 기차놀이를 할 것이기 때문이죠.

 

뚜율이 벽이나 사람의 몸을 통과해 돈을 훔쳐오고 노름판에서 주인은 상대방 패를 읽기도 하지만 카지노 같은 곳은 경비용 뚜율들을 별도로 키우고 장소를 정화하는 두꾼들도 고용하고 있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뚜율은 늘 가난한 이웃 서민들의 재물을 훔치는 것입니다.

 

뚜율 아트 모음  

  

뚜율을 떼어내려면?

뚜율의 항아리를 깨뜨리면 뚜율은 자유를 얻고 한없이 강해져 더 이상 통제할 수 없게 되는데 심지어 주인에게도 화가 미칩니다. 귀신과의 주종관계가 깨지면 언제든지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주인은 항아리를 새것으로 바꾸고 그 안에 시체기름을 채워 넣으며 잘 관리해야 합니다. 뚜율의 항아리는 달의 기운을 받아 단단해지도록 달빛 속에 놓아 두어야 하고 매월 14일에 주인의 피를 공양합니다. 항아리 안의 기름도 수위가 내려갔다면 다시 채워줘야 하고요. .

 

해가 더할수록 뚜율의 신통력도 커집니다. 주인의 꿈속에 나타나 대화하는 소통방식을 선택하는 뚜율도 있지만 주인의 피를 먹고 자라는 동안 구축된 주인과 뚜율의 교감은 점점 더 강해져 뚜율이 배고플 때 주인의 몸을 이용해 음식을 섭취하기도 하는데 한 밤 중에 일어나 주인이 자기도 모르게 냉장고 속의 생고기를 뜯어먹기도 하고 나중엔 말을 안해도 서로의 마음을 읽는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때로는 뚜율을 떼어버리려는 주인의 마음도 미리 읽혀 복잡한 상황이 전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인이 자신을 떼어내거나 없애려는 걸 미리 안 뚜율은 반드시 주인과 함께 최후를 맞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입니다. 뚜율은 여러 나라의 언어, 여러 지방의 방언을 알아들을 수 있어 뚜율 항아리를 해외에 버리고 와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뚜율은 반드시 돌아와 앙갚음을 할 테니까요.

 

뚜율을 정상적으로 떼어내려면 그 뚜율을 사온 두꾼의 도움을 받으면 되지만 그 두꾼이 이미 죽고 도제도 남기지 않았다면 문제가 커집니다. 뚜율을 항아리째로 묘지에 묻거나 바다에 던져 넣고 일련의 의식을 진행하면 뚜율의 영혼이 마침내 영원한 안식에 이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쉽게 없앨 수 있는 존재가 아니어서 제거에 실패하면 그 관계가 끈질기게 이어져 다음 세대로 상속되기도 합니다. 저주와 업보, 후회와 원한도 함께 말이죠.

 

한편 주인이나 두꾼이 뚜율의 족쇄를 풀어주는 것도 가능한데 그럴 경우 뚜율은 숲속으로 들어가 사라지거나 간혹 인가로 돌아와 거기 장난감들을 가지고 놀기도 하지만 대체로 인간들에게 아무런 위해도 끼치지 않고 교류도 하지 않으며 방관자로서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기만 합니다. 

 

결국 뚜율은 양날의 검과 같은 존재입니다. 자연상태의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해악도 없지만 못된 사람 손에 들어가면 온갖 말썽을 일으키게 되니가요.

 

인간의 나태한 본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뚜율은 그 작은 몸집에도 불구하고 꾼띨아낙이나 뽀쫑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도네시아의 메이저급 귀신이자 동남아 각국은 물론 중국까지 프랜차이즈를 가진 대표 재물귀신의 하나로 자리매김 하고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좀 뜬금없지만, 인도네시아 무속에 등장하는 아기의 이미지는 대개 태어나거나 성장할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꾼띨아낙, 웨웨곰벨, 깔롱웨웨에게 납치되거나 빨라식, 꾸양 같은 날아다니는 머리통 귀신들에게 공격당하는 힘없고 안타까운 존재로 등장하는 것이 보통인데 뜬금없이 ‘주인을 도와 이웃의 재물을 훔치는 아기귀신’이란 뚜율의 프로필에서 뭔가 위화감이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인도네시아인들은 왜 재물의 도난이나 분실을 하필 ‘아기’ 귀신 탓으로 돌리려 했을까요? (끝)

 

이분들은 뚜율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