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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가 호러를 다루는 법

beautician 2021. 5. 12. 13:05

인도네시아 퇴마의 세계

 

 

헬로우 고스트 스틸컷 – 출처: 팔콘픽쳐스  

 

2010년 한국에서 크게 흥행했던 <헬로우 고스트>가 인도네시아에서 팔콘픽쳐스에서 리메이크 제작하여 얼마전 스틸컷을 공개했다. 팔콘픽쳐스는 작년 5월에도 <7번 방의 선물>을 리메이크해 개봉하려 했으나 코로나 사태가 가라앉지 않아 아직까지 개봉일정이 잡히지 않았다. CGV 시네마스를 비롯한 현지 상영관들이 방역문제로 작년 3월 문을 닫은 후 8개월 만인 10월에 영업을 재개했지만 관객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6년 영화시장이 해외자본에 개방된 이후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고 있는 인도네시아 호러영화 장르는 작년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서도 흥행상위 15위에 다섯 편이 올랐다. 2017년 이후 매년 흥행돌풍을 일으킨 공포영화 <다누르(Danur)> 트리올로지는 헐리우드의 컨져링 유니버스를 벤치마킹해 다누르 유니버스를 구축해 본편 외에도 프리퀄과 스핀오프 등 모두 여덟 편이 나왔다. 현지 영화계 차세대 선두주자인 조코 안와르 감독의 <사탄의 숭배자(Pengabdi Seten)>2017년 인도네시아 영화제 일곱 개 부문을 석권한 데에 이어 2020 <지옥의 여인(Perempuan Tanah Jahanama)>도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해 또 다시 일곱 개 부문을 수상하며 호러영화의 인기를 재확인했다.

 

세계 최대 무슬림 인구를 가진 인도네시아에서 토착 귀신들을 소재로 한 영화가 종교적 마찰 없이 애호가들에게 각광받는 이유는 인도네시아에 이슬람을 전파했다고 알려진 왈리 송오(Wali Songo)의 전설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왈리 송오는 아홉 명의 수호자라는 뜻으로 인도네시아의 힌두-불교왕국들이 쇠퇴하고 이슬람 술탄국들이 출현하기 시작하던 15~16세기 활동한 이슬람 선교사들인데 다양한 기록이 서로 차이를 보이고 버전에 따라 그 숫자도 8명에서 13명 사이를 오간다.

 

그 중엔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칼리프가 보낸 쉑 수바키르(Syekh Subakir)라는 고위 울라마가 있었다. 그는 자바인들의 마음을 지배하며 이슬람 포교를 방해하던 현지 귀신과 마물들을 퇴치할 임무를 받은 퇴마사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가 똠박 끼아이 빤장(Tombak Kyai Panjang)이라는 장창 형태의 영적 무기를 성지로부터 가져와 자바섬의 정중앙인 띠다르산(Gunung Tidar) 정상에 박아 세우자 거기서부터 뿜어져 나와 인근의 마물들을 순식간에 불태워버린 영적 불꽃과 열기를 피해 자바 섬의 귀신들이 모두 해안으로 도망치는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그러자 급기야 9,000년을 산자바의 정령과 마물들의 왕 삽다빨론(Sabda Palon)이 띠다르 산에 현신해 40일 밤낮으로 쉑 수바키르와 결투를 벌였다. 그러나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자 삽다빨론이 자바 땅에서 이슬람 포교를 방해하지 않을 테니 그 대신 기존과 관습과 문화를 파괴하지 말 것을 먼저 요구하며 타협을 시도했고 쉑 수바키르헬로우 고스트 스틸컷 – 출처: 팔콘픽쳐스도 고심 끝에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결국 그래서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인도네시아의 전통과 문화 속의 무속신앙과 거기 깃든 모든 요괴와 귀신들이 살아남거나 이블리스(iblis), 마리드(marid -마령), 이프리트(ifrit-귀신), 샤이탄(shaytan-악마), (jann-악귀순으로 나열되는 이슬람 귀신들의 체계로 재편되었고 그것이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무속과 주술이 지금도 성행하는 이유가 되었다.

 

 

2020년 로컬영화 흥행순위 5위를 기록한 호러영화 <망꾸지워>의 포스터. 가장 무서운 귀신 중 하나인 꾼띨아낙(Kuntilanak-여성원귀)을 침착하게 제어하는 두꾼(dukun)의 대표적 이미지다.  

 

인도네시아 무속의 귀신들은 한국과 너무 달라 쉽게 와닿지 않지만 대규모 인원이 좁은 공간에서 밀집상태로 일하거나 공부하는 봉제공장이나 학교에서 심심찮게 벌어지는 집단 빙의, 즉 끄수루빤 마쌀(Kesurupan Massal)을 경험한 현지 한국 공장들도 적지 않다. 데모와 파업을 통해서도 쉽게 얻어내기 힘든 충분한 휴식, 양질의 급식, 위생시설 개선 등 근무환경문제가 끄수루빤 마쌀을 통해 순식간에 해결되는 경우가 많아 사용자 측에서는 초자연현상을 빙자해 노조나 배후의 불순세력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사용하는 방편이란 의구심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봉제라인에서 귀신을 목격한 직원들이 단체로 비명을 지르며 일사불란하게 졸도하는 기괴한 상황을 2층 관리실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종업원들을 쓸어버리는 것만 같다.

 

이렇게 되면 사용자측에선 빙의된 이들을 신속히 격리하고 전체직원을 조기퇴근 시키고 당일이나 다음날 출근시간에 인근 이슬람 사원에서 우즈타즈(Uztadz)나 루키야(Ruqyah)를 모셔와 종교의식을 통해 직원들을 진정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이다물론 우리 무당 격인 용한 두꾼을 불러와 주술적 축신행사를 갖기도 한다.

 

현지 호러영화들 중에는 주인공을 도와 귀신을 쫓아내는 조력자가 예의 두꾼이 아니라 이슬람 퇴마사인 루키야인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천주교의 구마사제 격인 루키야는, 그러나 종교기관이나 단체가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 교사인 우즈타즈가 스스로 그 역할을 자임하는 것이며 성수와 십자가 등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는 구마사제에 비해 루키야들은 오직 이슬람 경전인 알꾸란 (Al-Quran) 하나에만 의존한다. 최근 10여년 사이 강성 이슬람 근본주의 영향이 커지면서 루키야들의 활동영역도 더 넓어졌고, 굳이 퇴마에만 국한되지 않고 종교적 심리치료인 테라피를 표방하는 경우도 많다.

 

 

우스타즈인 아흐맛 쥬나이디(Ahmad Junaidi-왼쪽)가 한 이슬람사원에서 단체를 대상으로 ‘루키야’ 테라피를 행하고 있다. (Ahmad Junaidi/Courtesy of Ahmad Junaidi)  

현직 우즈타즈이자 루키야인 아흐맛 주나이디(48)는 마잘라 고입(Majalah Ghoib)이라는 초자연 사건 전문잡지를 발행하고 있었는데 초현실적 소재를 다루는 연속극들과 리얼리티 루키야 쇼같은 TV 프로가 인기를 얻자 아흐맛의 루키야 업무의뢰도 덩달아 늘어나기 시작했다. 자신과 가족들을 괴롭히며 빙의하려는 진과 악령들을 쫓아내 달라고 요청하는 고객들이 극적으로 늘어났기 시작한 것이다.

 

아흐맛은 루키야 퇴마술을 상업적 테라피로 발전시킨 선구자에 속한다.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루키야가 테라피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루키야 역할을 하는 우스타즈들도 퇴마를 상업적 치료행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흐맛은 사람들이 겪는 영적 세계의 불가사의한 문제들을 자신의 잡지를 통해 이슬람의 시각에서 설명하려 노력했고 그런 일들이 두꾼들의 전유물이란 생각을 타파하려 했다. 5천 부를 찍은 창간호가 순식간에 매진되었고 그 다음 달에는 7천 부를 찍었다. 출간빈도도 월간에서 격주제가 되었다. 아흐맛은 루키아 서비스를 위한 도구로 오직 알꾸란 만을 소지했고 두꾼들이 쓰는 부적이나 신물 같은 무속 개념의 물건들은 철저히 배제했다.

 

2004년에 이르러 마잘라 고입 잡지는 더욱 번창했고 그의 퇴마 서비스도 고입 루키아 샤리아(Ghoib Ruqyah Syarah)라고 이름을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다. 이슬람법에 따른 영적 퇴마란 뜻이다. 고객들이 하루 200명에 달했으므로 그는 십 수 명의 테라피스트들을 더 확보했고 과학적 설명을 위해 의대생들도 고용했다. TV나 영화사에서도 자문요청이 들어왔다. 그러다가 선뚜안 콜부 메타피시카(Sentuhan Qolbu Metafisika)라는 TV 쇼를 통해 이 테라피가 전국에 알려지자 고객 수가 100% 증가하면서 오전 7시반~오후 4시반이던 테라피팀의 근무시간이 밤 9시까지 연장되었다.

 

더욱이 인도네시아 울라마 대의원회(MUI)가 무속을 금지하는 파트와(fatwa)2005년에 발표하면서 루키야 방식을 공식적으로 축복해 루키야 테라피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더욱 굳건해졌다. 파트와는 아슬람 학자가 이슬람 율법에 입각해 내놓는 종교적 의견으로 무슬림 국가에서는 세속법 이상의 권위를 갖는 칙령의 성격이다.

 

2009년 동부 자카르타엔 인도네시아 루키야의 집 재단’(Yayasan Rumah Ruqyah Indonesia)이란 클리닉이 설립되어 매일 10명 안팎의 고객들이 찾고 있다. 루키야 테라피 비용은 테라피 종류에 따라 10만 루피아(7600)에서 30만 루피아(22900)까지 다양하다. 아흐맛은 2013년 다른 동료들과 함께 인도네시아 샤리아 루키아 협회(Ruqyah Syar'iyyah Indonesia Association – Arsyi)를 설립했는데 여기 등록한 루키야 테라피스트들은 1천 명이 넘는다.

 

장기간 출간된 마잘라 고입 잡지의 영향으로 루키야 테라피스트가 되려는 신세대 우즈타즈들이 그간 적지 않게 출현했는데 찐타 루키야 샤리아 재단(Cinta Ruqyah Syar'iyah foundation)을 설립한 슈하다 하나피(Ustadz Syuhada Hanafi)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잘 알려진 루키야 테라피스트이자 루키야 강사 겸 TV 방송인으로 무속의 굴레를 끊는 것과 각 지역마다 한 개의 루키야 클리닉을 설치하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한편 루키야 의식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아니면 신앙 치료 상당수가 그렇듯 영적 플라시보 효과에 불과한지는 한번도 밝혀진 바 없었다. 가자마다 대학교 종교와 이문화간 연구소(CRCS)의 아흐맛 문짓 조교는 루키야에 대한 인기가 식지 않는 이유를 2000년 초반부터 인도네시아에 불기 시작한 이슬람 보수화에 편승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새 밀레니엄에 들어서 확산된 슬람 레이블이 상업적 상품에도 붙기 시작했는데 이는 이슬람 정치세력의 출현에 힘입은 바 크다. “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루키야들의 활동반경이 예전에 비해 대폭 커지면서 두꾼들과 어느 정도 마찰을 빚는 것은 필연적인 측면이 있다. 양쪽 모두 시민들의 영적문제 상담과 퇴마라는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귀신들을 부려 상대방을 죽거나 병들게 만드는 산뗏 저주술(Ilmu Santet), 도검불침의 신체를 만드는 일무끄발(Ilmu Kebal), 나를 사랑하지 않는 이에게 미치도록 사랑하는 마음을 심는 뻴렛주술(Ilmu Pelet), 이웃이나 후손의 부를 훔쳐와 단기간에 부자가 되려는 재물주술(Pegugihan) 등을 시전하는 두꾼들이 좀 더 운신의 폭이 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세기까지만 해도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과 두꾼들의 관계는 앞서 언급한 바처럼 왈리 송오들이 이슬람과 현지문화를 융합시킨 사역에 힘입어 그리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올해 한국에도 완역본이 출간될 함카(Hamka)1939년 소설 <판데르베익호의 침몰(Tenggelamnya Kapal Van Der Wijck)>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함카(Hamka)  

 

(전략) 이 때까지만 해도 병이 아주 위중하지 않으면 의사에게 가지 않는 게 보통이었는데 사람들이 의사 모욕하기를 주저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도대체 의사가 뭘 안다고? 의사들은 이런 환자를 치료하지 못해! 상처를 치료하려면 주술사를 불러와야지!” 그러다가 나중에 환자 상태가 정말 위중해지면 그때 가서야 의사한테 달려가곤 했다. (후략)

 

(전략)빤더까르 수딴의 처신과 용기있는 행동에서 드러나는 성품은 매우 매력적이었고 심지어 간혹 주술에도 일가견을 보여 노인은 그가 마음에 쏙 든 나머지 자신의 딸 다엥 하비바와 혼인시켜 사위로 삼았다. (후략)

 

이 소설의 저자이며 수마트라 미낭까바우 지역 출신의 유명 언론인, 작가 겸 정치인, 인도네시아 주요 이슬람 단체인 무함마디아에서 요직을 거친 이슬람 성직자였던 함카조차 두꾼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고 주술을 당시 시대를 살아가던 남자들의 기본 소양이나 상식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한인사회도 현지 무속과 퇴마의 세계에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비단, 공장에서 벌어지는 집단 빙의 사건뿐만 아니라 여직원이 호감을 더할 목적으로 낮은 수준의 뻴렛주술이 걸린 립스틱이나 머리핀을 사용하고 있을 지도 모르고 거래상 미팅을 위해 찾은 상대방 회사에서 내준 커피에 어떤 치명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서명하도록 만드는 모종의 주술이 걸려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지의 광산을 방문하는 투자자들이나 출장자들은 현지에서 제공되는 음료를 절대 취하지 말고 자기 물병을 가지고 다니라는 조언을 종종 듣기도 한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