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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방송 기고] 코로나와 백신 관련 인도네시아 언론보도

beautician 2021. 4. 17. 14:40

[인도네시아 코로나 보도] 백신 논란 속 애써 보지 않는 것

 

 

독립궁에서 열린 2021년 인도네시아 언론의 날 기념식. 출처:대통령궁 공식 홈페이지 캡쳐

 

2021년 2월 9일(화)은 인도네시아 언론의 날(HPN)이었다. 각 언론사들이 이날의 의미를 되새기며 관련 기사를 낸 가운데 자카르타 소재 독립궁 짠디 븐따르 홀(Candi Bentar Hall)에서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참석하는 기념식이 온-오프라인으로 열렸다. 기념식 테마는 ‘팬데믹에서 부활, 변화의 선도자 언론과 함께 경제회복 관문에 선 자카르타’ 였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2020년 3월 2일 첫 코로나 확진자가 확인되기 전까지만 해도 철저한 방역체제와 신의 도움에 힘입어 인도네시아가 청정국 지위를 지키고 있다며 내각 회의에서 서로를 축하하는 분위기였다. 정부에 비판적인 몇몇 특정 매체들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정권의 의지와 결을 같이 하는 언론 상황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하기 불과 며칠 전인 2월 29일 가장 많은 발행부수를 가진 일간 꼼빠스(Kompas)가 ‘인간사에 사사건건 간섭하시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국경을 존중하여 당신 나라에 역병이 들어오지 않게 해달라 기도하면 응답하실 거라 믿는 건 순전히 당신 마음’이라고 시작되는 사설로 정부의 안일함을 강력히 질타했다. 당시 자카르타와 발리를 방문한 외국인 몇 명이 귀국한 후 코로나에 확진된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이후 인도네시아의 코로나는 동남아에서 가장 심각한 상황으로 전개되어 갔다. 2019년 1월 국가재난방재청장에 임명한 육군 중장 출신 도니 모나르도(Doni Monardo)를 코로나19 신속대응팀장을 겸임토록 하고 2020년 3월말부터 2개월 이상 대부분의 경제부문을 정지시키면서 인도네시아 정부는 방역에 전력을 다했지만 정작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했어야 할 뜨라완 아구스 뿌트란토(Terawan Agus Putranto) 보건부 장관은 실언과 안일함을 반복했다 현지 메이저 지상파 TV 중 하나인 메트로TV의 시사 프로그램 ‘나즈와의 시선’(Mata Najwa)에서 9월 29일 수차례에 걸쳐 인터뷰를 거절한 뜨라완 장관의 빈 의자를 향해 진행자 나즈와 시합(Najwa Shihab)이 “왜 대중에게 설명하지 않느냐?”고 다그친 장면은 조코 위도도 정부의 방역실패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나즈와의 시선> 방송에서 뜨라완 보건부 장관의 빈 자리에 질문하는 나즈와 시합 진행자 (유튜브 캡쳐)

 

이에 그치지 않고 그해 12월 6일엔 코로나 피해를 입은 서민들에게 돌아갈 정부의 사회적 지원금 일부를 중간에서 횡령한 율리아리 바투바라(Juliari Batubara) 사회부 장관이 우리 공수처 격인 부패척결위원회(KPK)에 전격 체포되자 민심이 들끓었고 국민을 배반한 사회부 장관을 사형으로 벌할 수 있느냐는 논의가 여러 매체 지면을 장식했다.

 

사회부 장관 직전엔 해수부 장관도 부패혐의로 체포되는 등 부패와 무능으로 비난받게 된 현 정부는 12월 22일 소폭 개각을 통해 국면전환을 시도했다. 부패혐의로 체포된 두 장관과 무능한 보건부 장관을 경질한 것은 물론 2019년 4월 대선 당시 그린드라당 총수이자 대통령 후보인 쁘라보워 수비얀토의 부통령 러닝메이트였던 산디아가 우노(Sandiaga Uno)를 관광창조경제부 장관으로 기용한 것이 개각의 방점을 찍었다 쁘라보워 수비얀토는 2019년 10월부터 이미 현 정부 국방장관으로 입각한 상태였으므로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산디아가의 입각으로 정적들을 모두 자기 편으로 돌려 세워 팬데믹 탈출과 경제재건을 동시에 노릴 준비를 마쳤다.

 

그 사이에도 인도네시아의 코로나 관련 수치는 계속 악화일로를 걸어 2020년 12월과 2021년 1월엔 하루 1만 명이 넘는 신규확진자를 내며 1월 26일 누적 확진자 100만 명, 3월 29일 150만 명을 넘어섰다.

 

2021년 1월 초 소규모 사회 단위의 이동제한을 골자로 하는 PPKM Mikro라는 정책이 자카르타 중심으로 시작되고 지난 해 말 입하된 중국산 시노백 백신이 현지 식약청 긴급사용승인을 받아 1월 13일부터 접종이 시작되면서 신규확진자 규모가 크게 줄어드는 극적인 반전을 보였다. 첫 번째 백신 접종자였던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2주 후인 1월 27일 2차 접종까지 마쳤다. 2021년 4월 현재 신규확진자 추이 그래프를 보면 정점을 지난 것이 분명해 보인다.

 

2021년 4월 14일자 인도네시아 코로나-19 신규확진자 추이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정부의 방역 무능을 지적하는 기사들은 거의 사라졌지만 그 대신 나타난 이슈는 코백스 공동구매 퍼실리티를 통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들어오면서 시작된 할랄 논쟁이다. 할랄(halal)은 종교적으로 정결함을 뜻하며 반대어는 그렇지 못한 하람(haram)이다.

 

인도네시아 식약처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로 인한 잠시 지연되었던 해당 백신의 긴급사용을 3월 19일 승인했다. 그러나 무슬림 사회에서 큰 발언권을 가진 이슬람 단체 인도네시아 울라마 대의원회(MUI)의 파트와(이슬람 율법에 입각한 유권해석과 그 결과 발표되는 칙령) 위원회는 백신 제조과정에서 돼지에게서 추출된 트립신 효소가 사용되었다고 주장하며 해당 백신의 ‘하람’을 천명했다. MUI 식약품 및 화장품 분석연구소(LPPOM MUI)가 식약청과는 별도로 WHO가 보낸 서류들과 유럽 약품청(EMA) 분석보고서까지 검토한 바 돼지 췌장에서 채취한 트립신 효소가 비이러스 숙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용되었고 그렇게 배양된 종묘가 백신생산에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아스트라제네카 측은 이 주장을 즉시 부인했다.

 

MUI는 나중에 긴급상황임을 감안해 ‘하람’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백신의 전국적인 사용을 허용하는 후속 발표를 내며 어정쩡한 입장으로 선회했다. 동부자바의 종교 지도자들은 MUI의 파트와에 반해 해당 백신의 할랄을 천명하면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동부자바를 비롯해 무슬림 인구가 적은 지역으로 배포되었다, 동부 자바는 전체인구의 96%가 무슬림이며 인도네시아의 가장 큰 이슬람 조직인 나들라툴 울라마(NU)의 본거지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배포된 또 다른 지역인 동부 누사떵가라, 발리, 북부 술라웨시의 무슬림 비중은 각각 9.05% 13.37%, 30.9%로 인도네시아에서 무슬림 인구가 가장 적은 곳이다.

 

이 사안은 무슬림 인구가 압도적인 인도네시아 사회를 정결하지 않으면 백신을 맞지 않겠다는 이들과 위급상황에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하람 백신의 접종도 무방하다는 양 극단으로 나누었다. 3월 23일부터 26일 사이 거의 모든 매체들이 이 이슈를 중요하게 다뤘다, 하지만 의외로 예전처럼 이슬람 측 입장에 어느 정도 가중치를 두던 기조를 이번엔 보이지 않은 것이 나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도네시아는 1945년 독립 당시 유일신에 대한 신앙을 다섯 가지 건국이념 중 하나로 넣을지 심각하게 고려했을 만큼 이슬람 영향이 강하다. 이슬람을 국교로 정할 경우 힌두교나 기독교 색체가 강한 지역들과 통일을 유지하기 어려워 인도네시아는 결국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세속국가로 남았지만 대통령을 위시해 비무슬림 지도자를 인정하지 않을 만큼 정치와 사회전반에 이슬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처음으로 정치가 종교에 대한 잠정적 우위를 갖게 되었다. 무슬림들의 자발적 동의 아래 이슬람 집단 예배를 정부가 금지할 힘을 갖게 된 것이다. 전에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2020년 12월 말에는 1998년 이래 정부의 거의 모든 사안에 간섭하며 위법성과 폭력성을 감추지 않던 이슬람수호전선(FPI)를 불법단체로 규정해 해산하고 그 수장인 리직 시합(Rizieq Shihab)을 체포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2월 초에는 각급 학교에서 여학생들에게 이슬람 복식인 히잡 착용 강요하는 것을 교육문화부가 차별행위로 금지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슬람에 대한 정부의 비교 우위는 정부의 주류생산시설 허가방침이 무슬림 단체들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일단 소강상태를 맞았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할랄 논쟁이 종교적 문제로 커지지 않는 이유는 팬데믹 상황에서 정부가 아직 이슬람에 대한 상대적 우위를 지키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최근 발생한 또 하나의 백신관련 이슈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주도하는 무료 백신접종 프로그램과 별도로 민간에서 주도하는 백신접종 프로그램에 대한 것이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코벡스 퍼실리티 및 직접 계약을 통해 확보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억회분의 공급이 지연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민간백신접종 프로그램에 참여한 업체들이 중국 시노팜(Sinopharm)과 칸시노 바이오로직스(CanSino Biologics)로부터 1회 접종방식 백신 500만회분, 그리고 2회 접종방식인 러시아 스푸트니크V 백신 2,000만회분을 포함해 4,000만회분 백신을 확보해 단계적으로 들어올 예정이다. 이 민간 백신접종 프로그램엔 현재 17,386개 민간기업과 30여개 국영기업이 참여해 860만 명 종업원과 그 가족들을 접종대상으로 등록되어 있다. 이들 백신은 정부의 무료 접종 프로그램에 사용하는 백신들과는 전혀 다른 종류이며 2,000만 명의 접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중 스푸트니크V 공급사인 러시아 직접투자기금(RDIF)은 올해 안에 인도네시아 인구의 30%에게 접종 가능한 1억6,000만회분을 공급할 수 있다면서 민간 프로그램 뿐 아니라 정부 프로그램에도 백신 공급의사를 밝히고 있다. RDIF는 스푸트니크V가 ‘할랄’하고 인체에 안전하며 냉장보관이 가능해 인도네시아가 현재 보유한 콜드체인 인프라에 적합하며 회당 10달러인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고 강조했다. 해당 백신의 항체생성률은 91.6%로 알려져 있다.

 

이 이슈의 쟁점은 이렇다. 정부 측은 지난 2월에 나온 2021년 보건부장관령을 근거로, 민간 프로그램용 백신이 정부가 공식 공급하는 백신과 다른 종류여야 하므로 민간 프로그램용 스푸트니크V 백신을 정부 무료 백신 프로그램에 편입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는 한편 감염병 학자 디키 부디만(Dicky Budiman)같은 이들은 백신 공급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당장 확보 가능한 백신이 있는데도 정부가 신속한 백신접종을 통한 국가면역체계 달성이란 원래의 목적을 도외시하고 의미없는 규정만을 고집스럽게 지키려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 역시 거의 모든 매체가 다루고 있으면서도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의견을 함께 표시하는 매체는 kompas, Jakarta Post, Tempo 정도에 불과하다. 작년 하반기 거의 모든 매체의 사설이 전 보건부 장관의 무능과 사회부 장관의 코로나 지원금 횡령 문제에 한 목소리로 매일 정부를 비난하던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현지 언론이 애써 외면하고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그것은 몇 개월 전에 비해 현격히 줄어든 일일 신규확진자 추이의 배경인 검사자 숫자와 확진율이다.

 

2021년 4월 14일자 인도네시아 코로나 상황 지표

 

2021년 4월 14일 44,286명을 검사해 5,656명이 확진되었으니 확진율은 12,7%다. 지난 4월 4일 자료를 보면 33,881명을 검사해 6,731명이 확진되었다. 확진율 19.9%. 즉 열 명 검사해 두 명이 확진되는 현재 상황은 신규확진자 그래프가 정점을 찍고 안정세로 접어든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검사수를 줄여 신규확진자 숫자를 4,000~6,000명 사이로 조정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현재 외국에서 입국하는 내외국인 모두에게 5일 간 호텔 강제격리를 규정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조만간 발리를 비롯한 주요 관광지를 코로나 청정지역으로 만들어 외국 관광객들에게 개방하겠다는 방침이다. 물론 강제격리는 면제된다. 지난 12월 입각한 산디아가 우노 관광창조경제부 장관이 목하 추진하고 있는 분야다. 이 목표를 위해 지표상 수치들이 뒷받침해줘야 하는 상황.

 

매일 발표되는 위와 같은 표에서 간단히 보이는 확진율 문제를 굳이 언급하지 않는 인도네시아 언론은 정부 취지에 매우 협조적인 게 분명하다. (끝)

 

 

2021. 4. 15.

 

 

[인도네시아 코로나 보도] 백신 논란 속 애써 보지 않는 것.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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