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등뒤에 다가오는 칼든 그림자

영웅본색

beautician 2019. 10. 6. 10:00




 

1.

그 두 사람을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은 뭐라 설명하기 좀 애매한 것이었습니다. 현지 부유한 화교들의 사무실이나 집에 가 보면 관상용으로 키우는 물고기 중 입가에 촉수 같은 굵고 짧은 수염이 좌우로 한 가닥씩 나 있고 사람으로 치면 앞에서 봤을 때 코가 있어야 하는 부분에 아랫입술이 올라 붙어 있는, 그래서 아래턱이 위로 불거져 올라와 강인하면서도 매몰찬 인상을 풍기는 꽤 크고 몸통도 긴 '아르와나'라는 이름의 물고기가 있습니다. 50줄에 막 접어든 석사장은 그런 인상을 하고 있었어요.





 

한편 처음 봐서는 그 견고한 화장 때문에 20대 초반인지 30대 후반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던 여자는 넘어질 듯 휘청거리는 높은 하이힐을 신고서도 남자의 가슴 정도밖에 오지 않는 키에, 매직스트레이트로 쫙 펴서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는 여간 공을 들인 게 아니었습니다. 어깨가 부풀어 오른 공주 블라우스와 그와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초미니스커트을 입은 여자는 마치 게이샤처럼 희고 두꺼운 얼굴화장 때문에 멀리서 보면 눈매와 눈동자, 그리고 콧구멍만 보이는, 마치 일본만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야사시한 여성 캐릭터가 막 현실세계에 튀어 나온 것 같았습니다. 가장 압권이었던 것은 한국에서부터 7시간 가까이 비행기를 타고 오느라 피곤했을 텐데도 어느새 그토록 정성 들여 화장을 고친 후 상대방 눈을 찌르기라도 할 기세의 길다란 인조눈썹까지 붙이고 있었다는 점이었어요. 요즘 자카르타에선 빵집 점원이나 주차장 수금원도 인조눈썹 붙이는 것이 추세이지만 당시 한 밤 중에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하는 한국 출장자들 중 인조눈썹을 붙인 사람은 그날 처음 보았습니다.



출장을 핑계로 한국에서 함께 날아온 부자재 업체의 유사장은 빠르만 거리(Jl. Jend. S. Parman)의 페닌술라 호텔에서 두 사람을 한국의 유력한 골프업체 사장과 비서라고 소개하고 있었지만 약간 긴장한 듯한 여자와 그녀에게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석사장의 분위기는 아무래도 사장과 비서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여자분을 바라보며 유사장이 짓고 있던 능글스러운 미소가 그런 추측을 뒷받침해 주고 있었고요.

 

그들을 소개하던 유사장은 내가 자카르타의 첫 직장에서 근무할 당시부터 거래했던 성실한 부자재 공급선 중 하나였습니다. 나름대로 꾸준히 노력하며 거래선을 늘려 가던 그의 사업이 급격히 몰락한 중심에는 수라바야의 전이사란 분에게서 소개받은 한 인도네시아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티아(Tya)라는 이름의 그 아가씨는 당시 북부 자카르타의 라와망운 골프장 정문 앞에 있는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대학의 새내기였어요. 보통 1년에 한번, 2년에 많아야 3번 정도, 4 5일 정도의 바쁜 일정으로 자카르타와 수라바야의 거래선들을 방문하고 그 시간을 더욱 쪼개 스마랑과 반둥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거래선을 개척하던 유사장은 언제부터인지, 늘 동행하던 조부장도 데려오지 않았고 뜬금없이 이 아가씨와 함께 수라바야를 다녀 오더니 그 다음부터는 별다른 업무상 미팅이 없는데도 1년에 4번 이상, 그것도 매번 10 11일 정도의 지루하도록 느슨한 일정으로 자카르타를 다녀가기 시작했습니다.

 

티아(Tya)는 유사장이 도착하는 날이면 가출이라도 한 여자처럼 커다란 여행가방 두 개를 양손에 하나씩 끌고서 호텔 로비에 나타났고 짧지 않은 출장기간 동안 두 사람은 마치 신혼부부처럼 거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유사장이 불러 호텔방에 올라가 보면 아직 옷도 입지 않은 티아가 침대 위에서 시트만 몸에 두른 채 베시시 웃고 있었습니다. 그럴 땐 참 난감했어요. 다시는 인도네시아로 돌아오지 않을 단기 출장자들이 흔히 그러듯 그들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 않고 아침 부페에 팔짱을 끼고 내려와 식사 내내 서로를 어루만지며 닭살 돋는 애정을 과시했습니다.

 

쟤를 만난 지 2년짼데…, 그 후로는 우리 와이프랑 한번도 같이 잔 적이 없어. 맹세할 수 있어.”

 

그걸 왜 굳이 나한테 맹세하려는 지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이 유사장 자신의 순정을 강조하려는 것인지 막판까지 치달은 외도를 과시하는 것인지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나 없는 동안 다른 남자 만나면 안돼…?”

걱정 마세요. 난 미스터르 유 뿐이에요.”

 

유사장이 자카르타를 떠나는 날이면 늘 되풀이 하던 이 대사 때문에 귀가 썩는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유사장을 공항에 데려다 줄 때 동행한 티아를 유사장의 얼굴을 봐 아까 떠나왔던 호텔까지 모셔다 줘야 한다는 사실이었어요. 인도네시아의 여인들이 사랑하는 한 남자를 위해 실제로 인고의 세월을 보내는 것도 사실이므로 싸잡아 비난할 수는 없지만 티아는 분명 그런 부류는 아니었습니다. 티아는 아마도 내가 바하사가울(Bahasa gaul)이라는 현지 청소년들이 쓰는 은어들을 잘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거나 아니면 내가 듣는다는 걸 전혀 신경 쓰지 않는지 공항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부터 핸드폰으로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자신이 지난 2주 동안 유사장과 지내며 겪은 흥미진진한 무용담을 쉴 새 없이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유사장이 출장기간 동안 퍼준 돈으로 폭죽 쏴 올리듯 당장 친구들을 호텔로 불러모아 시내 무도회장들을 전전하며 자카르타의 밤을 매일같이 밝힐 기세였죠. 품 안에 쏙 들어갈 것 같은 아담한 사이즈에 순진무구한 얼굴을 하고서 자기 인생사를 TV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처연한 스토리로 포장하며 동정심을 불러 일으키려는 인도네시아 아가씨들은 우리 등 뒤에서 전혀 다른 표정을 짓고 있기 쉽습니다.

 

석사장과 유사장, 이 두 쌍의 커플은 다음 날 아침 페닌술라 호텔식당에서도 아침식사 테이블 양쪽에 마주 앉아 경쟁하듯 애정을 과시하고 있었지만 거기 어정쩡하게 함께 앉아야 했던 내 눈길을 끈 것은 그들의 애정표현 만은 아니었습니다. 아침식사에도 인조눈썹 붙이고 나온 여자를 정말 그날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의 변장에 가까운 새하얀 화장을 하고서요.

 

자카르타에 골프샵을 내고 싶은데…, 설립하거나 인수하는 걸 좀 알아봐 줄 수 있죠? 수고비는 충분히 지불할 테니…”

 

이게 내가 이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이유입니다.

 

파산 후 3년차.

절박함에 떠밀려 말도 안되는 조건으로 취직한 반둥의 한 공장을 향해 온 가족이 함께 출발하기 직전, 박치기 대마왕이 군림하던 빠룽(Parung)의 봉제공장으로 급선회하면서 자카르타에 남게 되지만 거기 더 있다간 자칫 배알도 자존심도 없는 사기꾼이 되고 말 것 같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고 창칼을 든 자재업자들이 아우성치며 돈 받으러 쫓아오는 꿈까지 꾸었는데 막상 그곳을 탈출하고 나니 속은 후련하지만 당장 먹고 살 길이 또 막막해지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샐러리맨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내가 빠룽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표를 안주머니에 마치 비밀병기처럼 품고서 언제 떨어질 지 모를 위태롭고 높은 외줄 위에 올라선 것 같은 회사생활을 하루하루 버텨나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릴리에게 맡겼던 내 미용사업은 아직 나와 릴리의 두 가정을 먹여 살리기엔 태부족이었으므로 리스크를 감수하고 뭔가 다른 사업을 더 벌이거나 비교적 안전한 별도의 아르바이트를 찾아봐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만나게 된 석사장이 자기 일을 봐 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난 당신 같은 인간들하고는 일 못해! 남의 나라까지 와서 이게 무슨 짓들이야? 똑바로들 살아!”

 

이렇게 호기있게 소리치며 자리를 박차고 나서야 했는데 텅텅 비어있는 지갑과 남편이 돈 벌어올 거라 기대하고 있을 아내와 아이들이 사람을 비굴하게 만듭니다.

 

, 기꺼이…”

 

스스로가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렇게 해서 석사장에게 골프샵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마침 매물로 나온 한 혼마 전문점을 인수하면서 내 오랜 친구인 전직장관 딸의 이름을 빌려 영업허가를 냈고 한때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이름을 내밀었던 얍또 수조수마르노씨에게도 우여곡절 끝에 선을 대 협력관계를 구축했죠. 그는 당시 인도네시아 프로골프협회 회장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는 뻐무다 빤짜실라라는 전국단위의 악명 높은 보수청년조직을 거느린 것으로 알려져 마피아 대부라고도 각인되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군이나 정계는 물론 뒷골목 거물들에게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쟁쟁한 정치가였습니다. 뿐만 아리나 업계의 기존업체들과도 우호관계를 맺고 대대적인 광고를 하면서 대대적인 그랜드 오프닝을 하는 것까지. 난 석사장에게 부탁 받았던 일을 모두 끝마쳤습니다.

 

내가 한국에 자주 가야 되기 때문에 샵을 누가 좀 봐줘야 되는데, 어때요? 좀 봐줄 수 있겠어?”

 

제반 인허가와 인테리어, 제품반입까지 모두 완료하자 수고비 주겠다는 원래의 얘기는 쏙 들어가 버리고 석사장은 그 대신 나를 자기 가게에 채용하겠다고 합니다. 원래의 약속은 가게를 차려 주는 것까지였고 가게의 운영은 그 속눈썹의 아가씨 미스 박이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던 모양인데 미스 박은 석사장이 시내 요지의 아파트를 얻어주자 직원보다는 바로 안방마님 행세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동안 현지어 유창한 한국인 점장을 찾던 석사장은 마침 내가 경제적으로 쪼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마침내 알아차렸던 것입니다. 그것이 약속한 수고비 대신 직원으로 채용하겠다며 석사장이 선심 쓰듯 생색을 내는 이유였습니다. 원래의 조건을 손바닥 뒤집듯 제멋대로 바꾸는 것도 그랬지만 당시 나는 규모는 작지만 나름대로 미용사업을 하는 사업가였는데 마치 성은이라도 베푸는 표정으로 채용을 제의하는 석사장의 의도에 기분이 무척 더러웠습니다.

 

어디서 약을 팔아? 약속한 수고비는 어떻게 된 거요? 사업의 기본은 약속을 지키는 거 아니요?”

 

이렇게 펄펄 뛰었어야 했는데 이번에도 요청한 일을 다 해주고 나서 바보같이 한 푼도 못받고 떼여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이 뒷머리를 잡아 당겼습니다. 그런 경험은 택견전수관에서 이미 한번 겪어 보았던 것입니다. 같은 꼴이 되어서는 안되는데 이번에도 단 몇 푼의 아쉬움이 사람을 비굴하게 만듭니다.

 

, 기꺼이….:”

 

정말 죽고 싶었어요.

 

월급도 파견 지사원 월급 5분의 1 정도의 형편없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샵에 딸린 사무실에서 내 미용사업을 함께 진행하기로 약속받는 것으로 그나마 일말의 자존심을 지킨 셈이 되었습니다. 그래, 기본적으로 내 일을 하면서 아르바이트 하는 거라 생각하자구. 아르바이트 치곤 괜찮은 페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며 합리화 시키려 스스로 많이 노력했지요. 그리고 어차피 하기로 마음 먹은 것, 특히 남의 일을 할 때엔 얼마가 되었든 받은 돈값을 해줘야 합니다. BII 은행(주-지금은 메이뱅크가 인수함) 카드기 들여놓고 직원들 채용해 교육시키고 매일 골프와 클럽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가게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노력한 만큼 결과도 있어 얼마 지나지 않아 인수할 당시의 혼마 재고들을 거의 다 소진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가게는 좀처럼 돈을 벌지 못했습니다.

 

소파에서 개미가 나와요.”

침대 디자인이 아무래도….”

냉장고가 너무 작아서 식료품을 다 넣을 수 없어요. 그리고 냉장고에서 원래 소리가 나요?”

 

미스 박은 이런 불평들을 늘어 놓기 시작했고 결국 완비된 호화로운 가구 때문에 빈집보다는 두 배 이상 비싸게 주고 아파트를 임대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가구 대부분을 새것으로 바꿔 주어야 했거든요. 집주인이 바꿔줄 리 없었으므로 가게 수입을 따로 빼서 새것을 사줘야 했습니다. 아파트를 내려오자마자 자카르타 최고급 몰들 중 하나인 따만앙그렉몰의 호화로운 상점들이 나오고 미스 박이 거기서 이태리산 최고급 수입가구들을 고르면 돈은 가게에서 내 주었죠. 가게수입을 모두 퍼부어도 미스 박의 필요를 충족하기엔 어림도 없었으므로 석사장은 매번 한국에서 돈을 끌어 왔던 것 같습니다.

 

도대체 왜 아직도 안되는 거야? 빨리 좀 어떻게 해 봐! 미스 박이 아파트 앞에서 벌써 한 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잖아!!”

 

그날 한국에 있던 석사장이 그렇게 전화로 소리지르고 있었던 이유는 그날도 미스 박이 몰에 내려가 또 다시 한아름 쇼핑을 하고 돌아 왔을 때 아까 와있던 파출부가 그 사이 돌아 가면서 현관 키를 잠궈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미스 박의 쇼핑이 너무 오래 걸렸던 것이죠. 파출부가 기다려 줄 거라 생각했던 미스 박은 집안에 키를 놓고 나온 상태였고요. 쇼핑한 물건을 들을 잔뜩 든 미스 박은 아파트에 들어갈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아파트 키를 찾아 달라고 독촉하는 두 사람은 거의 5분마다 번갈아 전화를 걸어 오며 심지어 내게 화를 내고 있었는데 골프 거래선들을 만나러 삔뚜아이르(Pintu Air)에 나가 있던 나는 난감하기 그지 없었죠. 보통은 여자 혼자 사는 집인데 그 여분의 키를 내가 가지고 있었을 리 없고 퇴근한 파출부의 핸드폰은 불통이었어요. 파출부를 보내준 업체에도 수십 번 전화해 보고 한편으론 문을 따줄 열쇠공을 수배하던 끝에 혹시나 해서 전화해 본 중국인 집주인이 마침 자카르타에 돌아와 있었고 불행 중 다행으로 그에게 여분의 키가 하나 남아 있었습니다. 결국 수고스럽게도 집주인이 뿔루잇(Pluit) 자택에서 따만앙그렉 아파트로 내달려 미스 박의 아파트 문을 따 줄 수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업무 내용은 가게 점장이 아니라 미스 박의 집사 역할까지 추가되어 있었습니다.

 

집주인 놈, 지가 우리 집 키를 가지고 있으면 어떡해? 집에 경비원이라도 고용해야 하는 거 아닌가?”

 

자카르타에 돌아온 석사장은 집주인의 수고를 고마워하기는커녕 이상한 상상을 하는 모양이었고 미스 박의 유닛 현관 문 앞에 제복을 입은 경비원을 세워놓는 그림을 떠올리면서 나는 실소를 흘렸습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만약 내게 여분의 키가 없었다는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네도 이젠 알겠지만 미스 박은 나한텐 정말 소중한 여자야. 원하는 건 뭐든 다 해 주고 싶어. 자네도 남자라면 내 마음 알 거 아닌가?”

 

석사장의 그런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미스 박은 원래 석사장 오피스텔의 직원이었는데 종국엔 함께 살림을 차렸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석사장의 본부인이 당연히 노발대발 난리를 치며 기염을 토했겠죠. 미스 박을 위해 본처와 이혼할 배포까지는 없어 아내에게 각서까지 써주었지만 미스 박을 내칠 마음도 없었던 석사장은 몰래 해외에 보금자리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던 것입니다. 광조우와 토쿄를 돌아본 끝에 자카르타까지 온 이유는 미스 박이 광조우를 싫어했고 토쿄는 물가가 너무 비쌌기 때문입니다. 결국 만만한 자카르타가 낙찰된 후 미스 박은 애당초 눌러 살 생각으로 석사장과 함께 자카르타로 날아와 그날 페닌술라 호텔에서 속눈썹 붙이고 날 처음 만났던 거죠.

 

아마도 인형 같은 여자가 석사장의 취향이었던 모양이고 그가 미스 박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대신 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미스 박도 마치 소녀처럼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와 속눈썹을 유지하면서 석사장의 취향을 만족시켜 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스무 살 터울의 젊은 여자와 그렇게 오랫동안 부부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면서도 아이는 절대 갖지 못하도록 했으니 미스 박에게 모든 걸 다 퍼주던 석사장에게도 냉혹한 일면이 숨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본부인을 피해 머나먼 자카르타까지 쫓겨와 돈을 물쓰듯 하며 사치로 대리만족을 삼던 미스 박이 한편으로는 측은하게 여겨졌던 것도 사실이고 3주마다 서울과 자카르타를 오가며 두 가정을 꾸려 가는 석사장도 가끔 안쓰러웠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신혼방처럼 호화롭게 꾸며놓은 자카르타의 고급아파트에서 남편이 매일 밤 젊은 첩의 품에서 잠든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를 석사장의 본부인이 불쌍했어요. 자카르타 변두리의 자취방을 얻어 지낸다는 남편의 말만 믿고 매일 새벽기도회에 나가 남편의 건강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을 테니까요.

 

내가 가게를 봐준 1년 동안 처음엔 정확히 3주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오가던 석사장은 점점 자카르타에서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지더니 나중에는 한국의 남은 사무실까지 정리하고 한번에 6~7주씩을 자카르타에 머물게 되었어요. 그 동기는 유사장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겠죠. 그러나 어쩌면 석사장이 한국에 가 있는 동안 미스 박의 아파트를 드나든 젊은 남자들 소문이 그의 귀에도 들렸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나도 아파트 경비원들과 파출부에게서 미스 박의 그런 처신을 처음부터 듣고 있었지만 차마 석사장에게 직접 말해 줄 수 없었습니다. 석사장이 아내만으로 만족하지 못해 미스 박을 품은 것처럼 미스 박 역시 석사장만으로 만족하지 못한 것입니다. 아무튼 석사장은 이제 정식 체류비자와 근로허가를 받아 자카르타에 눌러 앉고 말았습니다.

 

 

2.

, 사업할 줄 몰라? 상담미팅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 이 자식아, 너 사업 제대로 하려면 아직 멀고도 멀었다!”

 

석사장이 이렇게 목에 핏대를 세우며 나를 몰아 세우는 곳은 싱가폴 창이공항입니다.

처음엔 그가 왜 저렇게 신경질을 부리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어요. 싱가폴 출장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는데 말입니다. 주구매처인 혼마로부터 기대 이상의 디스카운트도 받아냈고 향후 더욱 협조해 주겠다는 호의적인 반응도 얻어냈죠. 그러나 출장경과를 돌이켜 보면 짚이는 것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인디아인들이 독과점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골프시장은 날로 그 규모가 커져가는 추세였어요. 현지 업체들은 유명 브랜드 제품들을 미국이나 일본, 호주 등에서 다양한 음성적 경로로도 수입하고 있었지만 자칫 적발되어 된통 걸리면 에이전트쉽 취소 등 철퇴를 맞기 쉬웠어요. 그래서 이들 브랜드가 모여있는 싱가폴에서 구매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정상적인 방법이었죠. 도매계약에 따라 일정 물량 이상을 구매하면 디스카운트 40% 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인도네시아에 들여온 후 25% 정도의 마진을 붙여 팔면 인도네시아에서의 소매가격은 오히려 싱가폴보다 싸지지만 수입업체들은 여전히 만만찮은 이익을 보는, 그런 것이 골프채 장사였습니다.



여러 거래선들을 거쳐 혼마 싱가폴 지점에 도착할 때까지 석사장은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인도네시아어는 물론 영어도 전혀 하지 못했거든요. 그는 나와 함께 싱가폴을 나가면서 겸사겸사 구경시켜 준다는 명목으로 미스 박까지 데려간 것을 내내 후회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혼마 지점장과는 영어도 잘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난 전역 후 첫 직장에서 8년간 일본 수출을 담당하면서 실전 일본어를 익혔거든요. 그러나 석사장은 내가 통역하며 미팅 방향을 잡아 주는 것이 별로 기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미스 박 앞에서 내가 잘난 척 하며 영어와 일본어로 자기 뺨을 좌우로 후려갈긴 것이라 여기는 듯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창이공항에서 구매한 제품들에 대한 GST 환급을 받고 돌아온 내게 사업을 아느냐 모르느냐 다그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일이란 아무 것도 아닌 일로 간단히 균열이 나 버리곤 합니다. 그는 자카르타에 돌아와서도 화가 풀리지 않는 표정이었고 다음 날, 이후 제품 구매는 자신이 직접 담당할 테니 나는 구매에서 손을 떼고 판매관리만 하라고 퉁명스럽게 얘기했습니다.

 

그렇게 해주시면 고맙지요.

 

그 의미는 내가 더 이상 싱가폴에 골프채를 사러 갈 일이 없다는 얘기였는데 난 쾌재를 불렀습니다. 택견전수관 시절부터 시작한 미용사업은 지난 몇 년간 지지부진 판매상황에도 불구하고 현지 미용잡지에 계속 광고를 올려 놓았던 탓에 물건은 별로 나가지 않아도 제법 인지도가 쌓여가던 중, 시장상황과 미용사들 취향의 변덕으로 어느 순간 몇몇 신규거래선들이 발주를 내더니 곧이어 폭발적으로 매출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산더미 같은 빚을 단숨에 갚겠다며 석탄에 뛰어들어 깔리만탄의 바뚜리찐(Batulicin)과 반자르마신(Banjarmasin)을 오가며 트럭에서 또는 제티 노상에서 새우잠을 자며 고생하던 릴리 역시 바지선으로나마 몇 번 석탄선적에 성공하면서 우린 암울했던 절대빈곤의 시대를 서서히 벗어나는 중이었습니다. 마음이 조금 넉넉해지니 서러웠던 마음도, 뭔가 이유 없이 억울하던 느낌도, 더러운 진흙탕을 나 혼자 박박 기고 있다는 열등감도 눈 녹듯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미용사업에 시간을 좀 더 할애해야 하던 차에 구매를 직접 담당하겠다는 석사장의 말은 내 입지를 줄이겠다는 그 의도에도 불구하고 모멸감이 아니라 복음처럼 다가왔습니다.




Inferiority complex


 

석사장은 그 후 혼마 제품을 본토에서 직접 구매하겠다며 한 달에 두 번씩 일본에 날아갔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습니다. 통역과 업무 도우미로 토쿄에서 채용한 교포는 백수에 가까운 컴퓨터 프로그래머. 원래 정당한 대금을 치르지 않고 해외에서 한국인 인력을 헐값에 구하려 하면 큰소리 뻥뻥치는 사기꾼을 만나거나 나나 토쿄의 프로그래머 같이 극도의 경제적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법입니다. 석사장은 이 사람을 믿고 구매대금을 송금해 보냈지만 약속했던 중고 신품, 말하자면 새 것인데 오랫동안 매장에 전시해 놓아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깨끗한 구형 모델들은 오지 않고 그 대신 도착한 제품들은 대충 10년도 넘은 썩어가는 중고 드라이버며 스푼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20년은 족히 되었을 석기시대 혼마와 별 다섯 개를 붙여놓은 중국산 가짜들도 섞여 있었죠. 그립을 모두 갈아야만 하는 쓰레기였습니다. 하지만 혼마는 그립을 따로 제공하지 않았으므로 다른 브랜드의 그립으로 갈면 고객들에게 진품임을 증명하는 것이 더욱 난감해집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석사장은 곧바로 토쿄로 날아가 예의 프로그래머를 닦달하여 단단히 약속을 받은 후 다시 구매대금을 보내지만 프로그래머는 이번엔 급한 일에 돈을 써버렸으니 배째라며 결국 물건을 보내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돈을 떼인 석사장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금이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두 번씩이나 사기를 당한 일본에 또 날아가는 것도 볼썽사납고 싱가폴로 되돌아 가자니 더욱 자존심 상하는 일이 될 판이었습니다. 결국 석사장은 혼마를 접고 클럽 피팅으로 전환하기로 합니다. 클럽 헤드며 샤프트며 그립 등은 모두 한국에서 조달하니 더 이상 해외에서 골프채 사오느라 외국어로 고문당할 필요도, 사기를 당할 우려도 없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그것으로 나와 석사장의 인연도 다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덧 인도네시아에서 혼자서 직접 해나갈 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자신감도 생긴 상태였고 한국제품으로 교민들만 상대하니 외국어도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생각은 석사장도 당연히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피팅장비를 선적한지 얼마 후부터 미스 박도 가게에 출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돈 쓴 건 미스 박한테 결재 받아.”

 

석사장이 미스 박에게 파준 명함에는 박대리라는 직함이 찍혀 있었는데 부장이 대리에게 결재 받는 건 어느 나라 시스템일까요?

 

내가 피팅 가르쳐 줄 테니 잘 배워 두면 평생 먹고 사는데 도움 될 거야. 넌 날 만난 게 인생 최대의 행운이야. 그러니 그 미용사업인지 뭔지 다 때려 치우고 이거나 배워. 평생을 배워도 부족하겠지만

 

애당초 미용사업을 병행하는 조건으로 골프샵을 맡았던 것이고 당시 매출이 폭발하던 미용사업에서의 수입은 석사장에게서 받던 월급의 몇 배를 웃돌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모를 리 없던 석사장이 그렇게까지 억지를 부리며 내 자존심을 건드리는 이유는 사표를 내겠다는 얘기가 내 입에서 먼저 나오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내가 골프샵에서 일하기 전 개인비용으로 만들었던 비자가 만료되던 시점이었어요. 이번에 비자연장을 한다면 당연히 고용주인 석사장이 비용을 지불해야 할 시점이었던 것이죠. 그러나 미스 박에게 폭포수처럼 돈을 쏟아 붓던 석사장은 정작 지난 1년 동안 자신을 위해 일해준 내 비자비용을 아끼고 싶어 했습니다. 어쩌면 그런 비용이라도 줄여야 할 만큼 미스 박에게 들어가던 비용이 점점 감당하기 힘들어졌던 것인지도 모르죠.

 

그런 와중에서도 그럭저럭 석사장과의 인연을 원만히 마감해 가던 중, 중국에서 전화가 왔어요. 예의 유사장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무리한 장기출장과 그래서 필연적으로 발생했을 사업관리소홀로 결국 부도를 내고 만 유사장은 빗발치는 빚독촉을 피해 중국 광조우로 피신했다가 그곳에 눌러 앉아 버린 상태였어요.

 

석사장, 걔 요즘 잘 된데?”

 

석사장이 유사장에게 가끔 용돈을 보내 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고마워하고 있을 줄 알았던 유사장은 오히려 그를 비아냥거리고 있었습니다. 재기를 위해 돈을 빌려달라 했다가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는 것입니다. 내 비자비용과 같은 맥락으로, 어쩌면 유사장도 석사장에게 있어 미스 박 유지비를 위해 줄여야 하는 비용목록에 올라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그런 취지의 반응을 보인 건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어요. 유사장은 핏대를 세웠습니다.

 

그 새끼 완전 미쳤구나. 여기 광조우에도 첩 하나 따로 둔 거 모르지? 지난 달에 와서 아파트 사주고 갔는데 돈이 없긴 무슨 돈이 없어? 그래, 어쩌면 그렇게 돈지랄을 쳤으니 돈이 없을 만도 하겠다. 미스 박, 걔도 불쌍한 여자야. 그 여잔 석사장이 광조우 와서 무슨 짓 하고 다니는지 죽어도 모르겠지!!”

 

어쩌면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한국에서 가져온 돈으로 미스 박에게 끝없이 퍼부으면서도 전혀 쪼들리는 기색이 없던 석사장은 미루어 짐작컨데 아마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겠죠. 자기 얘기를 잘 하지 않던 그도 언젠가 몇몇 현지 지인들과 소주잔을 기울일 때 자신이 사업을 시작하던 70년대 후반을 회상하며 당시 제대하자마자 아버지 집 주차장에 사무실을 차리고 어렵게 사업을 시작했다며 회상한 적이 있습니다. 그에게는 그것이 어려웠던 시절이었는지 몰라도 난 배트맨 동굴 같은 주차장을 가진 높은 축대의 저택을 자연스럽게 연상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부모 덕을 단단히 본 그는 가난이란 게 뭔지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이를 갈던 유사장 말의 진위를 굳이 확인해 보려 노력하지는 않았습니다. 석사장과의 인연이 끝나가던 시절에, 그가 광조우에서 누구에게 아파트를 사주었든 내가 상관할 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석사장을 비난하던 유사장은 여전히 석사장이 다음 번 광조우에 올 때 뭔가 도움 받기를 간절히 기대하는 눈치였으므로 역시 돈의 위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대단하다는 것만을 절감했습니다.

 

 

3.

자네도 이젠 알겠지만 미스 박은 나한텐 정말 소중한 여자야. 원하는 건 뭐든 다 해 주고 싶어. 자네도 남자라면 내 마음 알 거 아닌가?”

쟤를 만난 지 2년짼데…, 그 후로는 우리 와이프랑 한번도 같이 잔 적이 없어. 맹세할 수 있어.”

 

석사장과 유사장이 했던 이 말들은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도 자주 떠오르는 상황이 생기곤 합니다. 중년에 만난 여인, 그래서 느끼게 되는 운명 같은 사랑. 물론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고 그런 감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거짓말이나 배신 같은 것들도 새삼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나중에 주변을 좀 더 둘러보니 석사장 못지 않은 한량들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본국의 아내가 아는지 모르는지 현지처와의 사이에 여러 자녀를 거느린 사람들을 수도 없이 보았고 한국에서 빼돌린 불륜의 연인과 살림을 차리고 막장드라마의 주인공들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도 적잖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인도네시아가 한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 별다른 사명감 없이 온 이들은 어쩌면 도덕적 감각조차 두고 오기 쉬운 모양입니다.

 

영웅본색이란 영화가 있었습니다. 쌍권총을 든 주윤발이 당장 생각나죠.

그런데 얼핏 비슷한 글자 같지만 영웅호색은 전혀 다른 말입니다. 역사상의 영웅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여성들을 대했는지는 알 길 없으나 역사를 읽어 보면 많은 여인들을 거느렸던 영웅들이 도처에 등장하지요. 세종대왕이 그랬고 알렉산더 대제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영웅의 호색은 역사적인 관행이니 굳이 후세가 문제삼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이 영웅이었기에 그들의 호색을 너그럽게 보아주려 한다는 점이겠죠. 당시의 본처들 눈에서는 불똥이 튀고 피눈물이 흘렀더라도요. 그러나, 호색해서 영웅이 되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남자들이 곧잘 잊는, 또는 일부러 잊으려 하는 부분입니다. 우리들이 힘들여 매일을 살아가는 삶과 투쟁의 현장인 인도네시아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처럼 사랑의 해방구가 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삶의 차이, 부의 차이, 눈높이의 차이이고 가치관의 차이이자 도덕적 각성의 차이인 것이죠.

 



이거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