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엄은희 칼럼] 인도네시아 한인사 본문
지난 10월 18일 동남아센터(센터장, 오명석)에서는 ‘인도네시아 한인 1세대의 시대기록과 성찰’이란 제목으로 초청강연을 개최하였다. 초대된 연사는 김문환 인도네시한인회의 자문위원이다. 김문환 선생은 1975년부터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인기업 1호인 한국남방개발주식회사(KODECO)에 입사한 것을 시작으로 38년째 인도네시아에 거주해 온 한인사회의 큰 어른이다. 필자가 그에게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적도에 뿌리내린 한국인의 혼>(2013, 자카르타경제일보)이란 책을 만나면서부터이다.
인도네시아에서 그의 공식 직업은 비즈니스맨이었으나, 현지에서는 그를 한인사의 ‘걸어 다니는 사전(walking dictionary)’이자 문필가로 기억하는 한인들이 더 많았다. 2000년대 이후 한인사회의 각종 지면에 기고해 온 그의 글은 재인도네시아 한인사회뿐 아니라 인도네시아의 정치경제 동향에 대한 깊이 있는 정보와 날카로운 분석을 담고 있었다. 2013년 발간된 그의 저서 <적도에 뿌리내린 한국인의 혼>에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와 군속들의 사연에서부터 대한민국 제1호 해외투자 사례였던 한국기업들의 인도네시아 목재산업 진출 이야기, 더 나아가 1980년대까지 한인 기업인들과 다양한 목적으로 인도네시아를 찾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인물 중심으로 담겨 있다.
필자는 인도네시아에서 두세 번 김문환 선생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이 책을 쓰기 위해 직접 발품을 팔아 현지의 인터뷰 자료를 수집하였을 뿐 아니라, 한국어, 일본어, 인도네시아어, 영어를 넘나들며 다양한 사료들을 발굴하고 교차 분석하는 열정과 수고를 직접 감내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학계에서 승인된 학위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한국에서는 덜 알려질 수밖에 없었을 테지만 시대를 기록하고 성찰해 온 그의 행동들은 그 자체로 지역연구자들이 하나의 모범으로 삼을만할 정도였다. 그의 노력으로 수집된 자료 일부는 2000년대 국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해외 독립운동사>의 동남아시아 편에 수록되면서 공식적인 국가 사료(史料)로 인정받기도 했다.
김문환 선생의 초청강연은 1시간 40분이나 이어졌으나 중간에 자리를 비우는 사람이 거의 없을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그가 소개한 인도네시아 한인사의 궤적 중 세 가지 사례를 지면으로 다시 소개하고자 한다. 세 사례 모두 한국과 인도네시아 간의 인적․경제적 교류의 범위와 깊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될 만큼 역사적인 이야기들이다.
인도네시아 한민족의 뿌리, 장윤원
적도의 자바섬과 믈라카해협 인근에서 활약했던 인삼 상인들에 대한 기록은 1890년대부터 존재한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인도네시아 한인사회의 초석을 닦으며 이름 석 자를 남긴 이는 장윤원이다. 한인들에게는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만한 이력을 지녔다. 그는 독립운동가였다. 일본 유학을 했을 정도로 수재였으며, 식민지 조선의 은행에 근무하면서 은행 돈의 일부를 3․1 운동의 자금으로 빼돌렸을 만큼 독립에 대한 열망을 지녔던 이다. 물론 이 사건은 은행과 당국에 적발되었고, 그를 임시정부가 있던 중국으로 탈출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임시정부에서 그에게 맡겨진 임무는 다시 자금 조달이었고, 그는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낯선 땅 바타비아(Batativa, 자카르타의 옛 이름)에 도착했다. 1920년 9월의 일이다. 이후 바타비아에서의 그의 활동과 임시정부와의 관계는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다. 하지만 일본 패망을 기점으로 자바섬에서 만들어진 한인거류민회나 고려독립청년당을 뒤에서 후원한 한인사회의 어른으로 기억한다는 점이 김문환 선생의 기록에 의해 증빙되기도 했다.
한 가지 더, 현지에서 가톨릭에 귀의하고 화교 여성과 결혼한 그는 여러 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그의 아들 중 한 명인 장순일은 자카르타의 명문 가톨릭 사립대학 아트마자야(Atmajaya Univerisita)의 설립자 중 1인이다. 이 대학은 자카르타 도로망의 동맥이라 할 수 있는 수디르만로와 가또수브로또로가 십자로 교차하는 스망기인터체인지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태평양전쟁의 잔류자들, 군속의 명암
처음 의미 있는 규모로 인도네시아를 찾은 한인들의 발자취는 일제 강점기 한민족 수난사의 일부이기도 하다. 1942년 3월 동남아시아 전역을 점령한 이후 일본군은 큰 수로 늘어난 연합군 포로들(군인뿐 아니라 가족 포함)을 감시할 인력을 당시 식민지였던 조선과 대만에서 차출하였다. 1944년 조선에서 차출된 포로감시원들은 총 3,000명이었는데, 그중 1,400명이 자바섬으로 배치되었다고 한다(그 수만큼의 위안부 여성들도 끌려왔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1945년 8월 갑작스러운 종전 이후 조선인 군속들의 처지는 180도 바뀌었다. 전범자(戰犯者)가 된 것이다. 포로들과 맞대응하며 민낯의 감시원 역할을 했던 그들은 대부분 체포되어 투옥되었고, 일부 악질적인 행동을 했던 이들은 처형되기도 했다.
이러한 군속 중 양칠성이라는 사람이 한국에서 조명받은 적이 있다. 필자는 몇 가지 이유로 지난 8월 17일(인도네시아의 독립기념일, 한국보다 이틀 늦다)에 그의 무덤을 찾아 중부 자바 가룻(Garut)이라는 곳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곳에서 꼬마루딘이라는 현지 이름과 한국명 양칠성이 함께 새겨진 비석이 서 있는 그의 무덤을 찾았다.
2000년대 초 한국의 매스컴은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서 한 게릴라 부대를 이끈 영웅으로 그에 대해 그려낸 적이 있다. 하지만 한 편에서는 악질 전범으로 투옥되어 연합군의 처벌을 피해 도망친 조선인 군속이었을 뿐이라는 냉정한 평가도 있다. 그의 무공이 어떤 정도였는지 게릴라전의 실상은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는 해방 후 다시 인도네시아 재점령을 기도한 네덜란드 세력에 대항했던 인도네시아 독립 게릴라 부대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적이 있다.
매스컴의 조명과 영웅 만들기의 서사도 난무하지만 양칠성에 대한 김문환 선생의 평가는 냉정한 편이다. 양칠성의 인생 역정은 영웅과 친일 사이, 악랄함과 대범함 사이에서 진동하는 모순덩어리 그 자체이기도 하다.
최초의 해외진출 한국기업, 한국남방개발(KODECO)
한국남방개발은 한국의 해외투자 1호 기업으로, 1968년 2월 한국정부로부터 450만 달러의 해외투자 허가를 받아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남부 바투리진에서 원목 개발을 시작하였다. 코데코의 뒤를 이어 인니동화(현 코린도), 경남교역, 한니흥업, 아주임업 등이 인도네시아의 산림개발업에 진출하게 되었으며, 이들을 통해 인도네시아 한인사회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되었다.
1970년대 초에서 80년대 초까지 한국의 합판 산업은 ‘나무 없는 나라에서 나무를 원료로 연간 약 1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기적’을 만들어내는 업종이었다. 섬유, 신발, 가발 등 경공업 중심의 산업 구조에서 중화학공업이 본격화되기 전 합판산업은 한국의 산업화를 이끈 기간산업의 지위를 누렸다. 이 산업의 핵심 원자재인 원목의 안정적 수급을 위해 수입 방식이 아닌 직접투자 방식의 해외 진출이 한국남방개발에 의해 인도네시아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일을 선두에서 지휘한 이가 최계월 회장이다.
이후 1970년대부터 건설업체 삼환기업, 신한기공, 현대건설, 대림산업을 비롯해 미원, 대한방적, 종근당 등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이 인도네시아를 찾으며 한인사회의 기반이 탄탄하게 다져질 수 있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정식 수교를 맺은 해는 1973년이다. 위의 세 사례 모두 한-인도네시아 양국 관계에서 정부 차원의 공식적 교류 이전에 활발한 민간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 세 사례 이외에도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들이 기록 이전의 상태로 남겨져 있다. 한인 1세대이자 독립연구자인 김문환 선생의 뒤를 이어 새로운 역사적 기록과 자료들을 발굴하고 정리해야 할 임무는 이제 다음 세대 연구자들의 몫이다.
글|엄은희 (동남아시아센터 선임연구원)
출처 : http://snuacnews.snu.ac.kr/?p=6304
엄은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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