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막스 하벨라르

막스 하벨라르 번역 후기

beautician 2017. 12. 4. 10:00

막스 하벨라르 번역 후기

 

오지 광산에 들어가 할 일 없는 밤시간에 뭔가 대단한 소설을 휘갈겨 써 보겠다고 생각하던 중 뜬금없이 번역에 팔을 걷어붙인 가장 큰 이유는 존경하는 양승윤 교수님의 제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막스 하벨라르는 세계공정무역의 지평을 열었던 작품입니다. 한 시대를 대표하며 세계사의 변곡점을 제공한 고전작품을 번역, 출간하는 작업에 저명한 학자가 내 팔을 잡아 끌었다는 사실이 영광스럽지 않을 리 없었습니다.

 

물론 처음엔 그분의 제의가 조금 의아했습니다. 양교수님은 학계에서 인도네시아와 동남아 연구로 명망 높은 분이고 막스 하벨라르는 오늘날 인도네시아 지역인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19세기 실상을 다룬 네덜란드 소설입니다. 그리고 난 인도네시아에서 오래 일했지만 학창시절 전공은 영어였고요. 결국 인도네시아라는 접점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교집합이 없어 뭔가 복잡한 함수를 쓰지 않으면 답을 얻기 힘든, 생소한 요소들의 조합이라고 느껴졌던 것입니다. 게다가 돈 벌겠다고 외국에 나와 별반 성공적이지 못한 사업으로 좌충우돌하던 전직 문학도가 그 끝물에 뜬금없이 다시 한번 뜻을 세우고 소설가의 길로 뛰어드는 중이었다 해도, 양교수님 정도 되시는 분에겐 인도네시아 문화와 네덜란드어에 정통한, 날고 기는 후배 후학들이 얼마든지 있을 터였습니다. 그러니 막스 하벨라르 번역팀을 꾸리던 그분이, 말루꾸 제도 깊숙한 오지의 할마헤라 규조토 광산 현장소장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던 내게 손을 내민 것은 의외의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네덜란드어 전공자가 인도네시아어에 대해 뭘 알겠어요? 그리고 인도네시아어를 전공했다고 누구나 다 19세기 동인도 문화를 이해하고 문학적 표현을 다룰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요? 내가 보기엔 후배님이 딱 적임자일 것 같은데……”

 

내가 인도네시아 문화, 특히 수까르노 초대 대통령 시절의 현대사와, 이슬람의 수면 밑에서 여전히 적잖은 존재감을 발휘하는 현지 무속에 대해 나름대로 공부했던 것과, 한인회가 발행하는 월간한인뉴스에 정기적으로 글을 싣고 있는 사실에 주목하셨던 건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오랜 세월 갈고 닦은 교수님의 직관과 경험이 작렬했던 거겠죠. 아무튼 그 말씀은 분명 칭찬으로 들렸고 난 아마 그때부터 춤추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내가 고래도 아니면서. 난 양교수님이 내민 손을 굳게 잡았습니다. 이제 그 손 놓치면 큰일나는 겁니다.

 

결코 얇지만은 않은 소설책 한 권, 그것도 160년 전 처음 출간된 고전 문학작품을 통으로 번역하는 일은 섣부른 마음으로 덤벼들었다가는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기 쉬웠습니다. 그랬다가는 교수님께도, 지인들에게도 얼굴 들고 다니기 어려워지고 마는 겁니다. 소설도 쓰고 인문학 책도 내겠다던 사람이 뜬금없이 무슨 번역이냐는 스스로의 반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당시 빌려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일본의 대표 소설가인 그 역시 소설을 쓰지 않을 땐 주로 영문 번역으로 소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적잖은 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5개월간의 번역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구한 막스 하벨라르의 영문판이 어딘가 좀 수상했습니다. 자카르타를 이 잡듯 뒤져도 영문판을 구할 수 없어 끌라빠가딩 몰의 수입서적 전문점 파피루스에서 인터넷으로 미국에 주문해 근 한 달 만에 손에 넣은 것이었는데 말입니다. 다양한 영문판들 중 비교적 싼 것을 선택했지만 그 가격 차이라는 것이 기껏해야 제본방식이나 커버 재질의 차이이지 책의 내용이 달라 생긴 차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같은 원본을 기반한 번역본일 테니 말입니다. 마침내 우편으로 도착해 받아 든 책자는, 그러나 뒤로 갈수록 오탈자가 범람했고 정말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이 번역한 것이 맞을까 싶을 만큼 거칠어지면서 곳곳에 등장하는 모호한 표현들이 나를 번번히 걸려 넘어지게 했습니다. ISBN 코드도 당당히 달려 있고 정규 경로를 통해 구한 책이 절대 그럴 리 없겠지만 마치 아마추어 여러 명이 저마다 부분부분 번역한 것을 대충 짜집기 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어떤 부분은 놀라운 재기가 번득이는 표현들이 몇 페이지씩 넘쳐흐르는가 하면 또 어떤 부분은 심각하게 저돌적이고 중의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오역방지를 위해 비교용으로 인도네시아어 번역본도 한 권 사서 펼쳐 놓았고 급기야 인터넷에서도 공개본 영어판을 하나 찾을 수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1868년 알폰스 레휘스 남작(Baron Alphonse Lahyus)이 번역하여 영국 에딘버러에서 첫 인쇄된 영어판의 PDF 파일을 구글 아카이브에서 만났던 것입니다. 물론 뒷편의 ISBN 코드로 미루어 20세기에 다시 중쇄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결국 거친 영어 종이책 한 권, 인도네시아어 종이책 한 권, 그리고 고루한 19세기식 표현으로 가득 찬 인터넷 영문판 한 권, 그렇게 세 권의 책을 놓고 한 문장 한 문장 비교하며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첫 영문판이 좀 부실했던 것이 오히려 보다 확실히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셈입니다.

 

더욱이 내가 1차 번역을 마치고 다듬은 원고를 넘겨받는 양교수님은 네덜란드 원서를 펴놓고 쟁쟁한 후배교수들의 자문과 지원을 받아 오역과 문맥을 수정한 후 재교정본을 윤독해 다시 다듬는 식의 체계를 세우고 있었으므로 나로서는 든든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양교수님은 한국어 완역본을 내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리 조사해 본 바에 따르면 네덜란드의 한 대학에 교편을 잡은 동문 출신 교수님이 30대 시절인 1990년대에 막스 하벨라르를 먼저 번역 출판한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절판되어 구할 길 없는 그 책을 당시 네덜란드어판 원서로부터 직접 번역했을 것이 분명한 그 분은, 세 권의 번역본을 펼쳐놓고 원서를 향해 좁혀 들어가는 나보다 훨씬 더 유리한 입장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막스 하벨라르는 두 번째 한국어 번역본이 되는 셈인데 내 이름 뒤에 따라붙어 번역의 수준을 보장해 줄 교수박사같은 쟁쟁한 학위와 호칭도 없다는 사실이 우리 팀에게 상대적 마이너스 요인이 될까 걱정했습니다. 더 나은 번역을 담보하기 위해 내가 뭐 하나 더 나은 구석이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의 내가 당시의 그분보다 세상을 조금 더 굴러다녔고, 비록 네덜란드어엔 문외한이지만 작품의 배경이었던 인도네시아에서 오래 살아왔다는 것이 어쩌면 경쟁력일 수도 있을까요? 물론 새로운 밀레니엄에 들어선 오늘날의 인도네시아는 식민지 시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난 나름대로 19세기 중반의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공부하고 막스 하벨라르와 물타뚤리의 흔적을 뒤쫓으며 당시의 시대상에 대한 묘사를 솜씨 좋게 번역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물론 나의 궁극적인 실력이란 내 뒤에 계신 양교수님이 내가 저지를지도 모를 모든 오류와 실수들을 반드시 발견하고 수정해 줄 것이란 믿음이었던 거고요.

 

할마헤라 규조토 광산에 들어가기로 했던 계약이 깨진 것이 나에겐 분명 재앙이었지만 이 책을 위해서는 천만다행이었습니다. 그 오지 숙소에서 퇴근 후 밤시간을 밝혀 번역할 생각이었는데 다양한 통신수단이 갖추어져 있고 대량의 정보를 검색, 확인할 수 있는 자카르타가 번역을 위해 훨씬 효율적인 환경임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할마헤라 행 불발은 번역의지가 여러모로 더욱 불타오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의 불행이 일에 도움이 된 것은 그것 뿐이 아닙니다. 추석 즈음엔 한 부동산개발업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비록 번역이 막판을 향해 근접하고 있었지만 임박한 출근일 이전에 남은 작업을 모두 마치려고 만사 제쳐놓고 매달리지 않았다면 양교수님과 약속한 1차 번역 시한을 지키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물타뚤리의 저주라고 해야 할까요? 그 회사와의 약속도 출근일 직전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이래저래 모든 환경이 막스 하벨라르의 번역을 위해 내내 내 등을 밀어 붙였습니다.

 

번역진도가 절반을 넘어가던 시절 슬럼프가 찾아왔습니다. 양교수님으로부터 번역 앞부분에 대한 첫 재교정본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여러 번 검토했음에도 불구하고 양교수님 손에서 몇 군데 오역이 확인되었고, 나름대로 고심했던 작품 상 말투가 모두 경어체로 수정된 것도 그랬지만 양교수님의 작업과정이 번역검토 정도가 아니라 거의 새로 쓰는 수준의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고 있다는 사실에 무릎을 꿇었던 것입니다. 그분의 손을 거치면서 번역문의 품격이 몰라보게 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내가 아직 한참 멀었다는 걸 새삼 실감했던 것이죠. 6월에 있었던 이슬람 명절 르바란 이둘피트리 휴무기간에 100페이지 이상 번역하며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지만 첫 재교정본을 받은 후엔 한달 간 열 페이지도 채 나가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슬럼프에 허덕였습니다.

 

다 때가 있는 법입니다. 번역도 술술 풀릴 때 빨리 해버려야 하는 겁니다.”

 

처음 번역 시작할 때 양교수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이 진리였던 겁니다.

 

다시 페이스를 되찾는 과정에서 각 번역판들의 또 다른 문제점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번역본에 따라 대대적으로 누락되거나 생략된 부분들이 발견된 것입니다. 한쪽 번역본엔 있지만 다른 번역본엔 없는 문장이나 단락들이 적지 않았던 것입니다. 특히 긴 목록들이 나열된 부분에서는 몇 페이지씩 뭉텅뭉텅 생략된 곳도 있었고 한 문단이 통째로 누락된 것들도 있었습니다. 책 여러 권을 비교하며 번역하는 방식이 아니었다면 결코 발견하지 못했을 부분들입니다. 물론 그런 생략은 사뭇 의도적으로 행해진 것 같은데 당시 번역자들은 목록들 대부분을 생략해도 내용 전개엔 지장이 없다고 생각했거나 오직 네덜란드 사람들만 이해할 만한 유머나 언어습관에 대한 묘사들은 필연적인 어색함을 불사하면서까지 굳이 번역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라 보입니다. 그래서 양교수님이 완역본을 만들자고 강조하시는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으로부터 불과 몇 십 년 지난 시점의 유럽, 극단적인 식민지 지배논리로 사용되던 당시 기독교 교리들, 네덜란드 총독부와 현지 귀족사회에서 엿보이던 온갖 부조리, 19세기 중반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환경과 사람들, 지역적, 정치적, 역사적 상황, 관리들의 직책, 칭호 등 지금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설명하기 위해 마치 논문처럼 각 페이지 말미에 산재한 산더미 같은 각주들을 본문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게 하는 것은 물론 그렇게 각 번역본마다 생략되고 축약된 부분들의 원형을 복원해 원서의 내용과 의도에 가장 근접한, 한국 독자들을 위해 완전하고도 이해하기 쉬운 막스 하벨라르를 출간하는 것. 그것을 완역본을 낸다는 의미로 이해한 것입니다.

 

1차 번역을 모두 마치고 양교수님께 나머지 작업분을 넘겨드릴 즈음엔 본의 아니게 막스 하벨라르에 대해 나름 전문가가 되었고 작가 물타뚤리에게 한껏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구태의연하고 고루할 것이라 지레짐작했던 이전 세기의 글을 보면서 혀를 차고 분노하고 감동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작품 속의 막스 하벨라르와 똑 같은 삶은 살았던 물타뚤리는 이 자전적 소설 속에서 소위 꼰대라 불려 마땅한 보수적이고도 이기적인 중년의 암스테르담 커피중개상과 치기 어리면서도 정의롭기 그지없는 진보적인 독일 청년, 그렇게 두 명의 화자(話者)의 전혀 다른 시각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네덜란드와 동인도의 당면한 문제들을 조명했는데 그 열정과 유머와 독설이 21세기에 들어선 오늘날에도 전혀 구태의연하거나 고루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많은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의 사상이 백 년도 넘는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그 글을 읽는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과 1년 전에 쓴 글을 다시 꺼내 읽어 보아도 당시의 치기와 미숙함에 손발이 오그라드는데 160년 전의 글에서 철 지난 과거의 그림자가 아닌, 변함없이 현재를 투영하는 근본적인 화두를 발견하는 것.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들은 아마도 그런 특징을 가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거의 비슷한 시대에 나와 미국 흑인노예제도의 참상을 고발한 스토우 부인의 소설 톰아저씨의 오두막집’(Uncle Tom’s Cabin)과 함께 당대 대표적인 사회고발소설로 각광받으며 전세계 수많은 언어로 번역된 막스 하벨라르는, 주로 영미문학에 익숙해져 있던 한국인들에게 보다 많이 읽혀졌어야 할 작품이며 이제 그 완역본을 한국 독자들에게 내놓는 번역출판작업의 한 축을 맡아 참여하게 된 것은 더 없는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규조토 광산이나 부동산개발회사에 가지 못한 것, 후회하지 않습니다.

정말입니다.


 


'막스 하벨라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틴느 - 물타뚤리의 부인  (0) 2017.12.20
Multatuli again  (0) 2017.12.09
물타뚤리 - Another Tryout  (0) 2017.12.02
[막스 하벨라르] 물타뚤리 초상화   (0) 2017.12.02
물타뚤리 - 2nd Tryout  (0) 2017.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