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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송재선 기록] 한인센터와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의 부지소유권 분쟁

beautician 2017. 5. 15. 20:05



재 인니 한인여러분.

 

우리들이 인니에 진출한지 어언 50년을 바라보지만 한인들이 모일 수 있는 쉼터가 없다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이유는 한인들의 땅을 대사관에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어제의 역사를 알아야 오늘을 이야기할 수 있는 바 이 사태의 자초지종을 설명하겠습니다.

 

1974 310일 부임한 이재설 대사(2) 1974410일 박정희 대통령에게 "북괴는 우리보다 앞서 ASEAN 국가 중 공산국가 공관이 가장 많은 인도네시아와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고 그 공관은 우리 공관보다 대지와 건평이 2배 이상입니다. 우리나라의 국위를 선양하고 발전상을 표징하며 북괴와 비교해 월등한 우월함을 과시할 수 있도록 한국대사관, 무역관, 외환은행 등 한국기관과 기업들을 수용할 수 있는 한국회관(가칭)을 건립해야 합니다"라는 내용의 공문을 올렸습니다. 그해 419일 대통령, 비서실장, 국무총리, 외무부장관이 이 공문에 서명했습니다.

 

1975 1 1일 신년인사차 대사관을 방문한 외환은행 염동휘 소장 및 여러 회사 지사장들은 "대한민국이 너무 어렵습니다. 대사관부지를 매입할 자금이 없습니다"라는 대사의 설명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다음날부터 염동휘 소장이 주도하여 코리아센터 유치재단 명의로 매입한 부지(현재 대사관위치)에 건물을 지어 1-2층에 대사관을 유치하고 그 위층을 13개 한국회사들에게 분양하겠다는 쉽지 않은 결정을 짓고 대사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대사가 외무부장관에게 이 내용을 건의하자 "대사관의 특수업무 상 개인회사와 같은 건물에 있을 수 없음"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실의에 찬 대사를 위로한 후 염동휘 소장이 비장한 각오로 각 회사 지사장과 본사들을 설득해 1976218일 기 매입한 한국회관용 부지 중 3,830m²를 대사관 부지로 정부에 기증키로 하였고 나머지 3,716 m²에 한국회관을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대사관, 한국회관 건물을 현대건설에서 설계하고 1976.4.23 현대건설에서 착공했으나 공사기성고 지불의 지연이 문제되어 공사가 중지된 후 1977 4 2일 경남기업이 재시공을 맡았습니다.

 

골조공사가 거의 끝날 무렵, 대사관에 근무할 직원과 가족들의 주택임대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한국회관 4층 위에 아홉 가족을 위한 아파트 2개 층을 증축하는 문제를 염동휘소장한테 애원해 온 바 이를 관련회사들에 타진해 본 염소장은 13개 회사 중 10개 회사 본사로부터 절대 반대의견을 받게 됩니다. 염소장이 이 문제해결을 위해 서울출장을 통해 모든 관련회사들을 방문해 아파트 증축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국회관 건축허가서는 4층 허가) 대사관, 한국회관은 1978 8 15일 준공식 후 즉시 업무를 개시할 수 있었고 아파트는 1979 1 20일 대사관 직원들과 가족들이 입주하여 1990 5 30일까지 거주하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카르타 한국회관 회사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자카르타 한인들 2세 국적교육에 보태라고 미화 5만 불을 장학금 용도로 1977 6 16일 하사하였고 이를 계기로 남방개발(최계월 회장) 10개 회사에서 375,000불을 갹출해 학교 설립자금 모금을 완료했습니다.  마침 한국회관 부지와 붙어있던 1,270m²의 터를 1977 7 25일 매입하였으나 외국인의 명의로 부지매입을 못하는 문제를 이재설 대사의 제의로 학교부지를 김영호, 양경선(대사관 직원)과 염동휘 소장의 명의로 부지매입계약서 서명하고 계약서 원본은 염소장 본인이 보관했습니다.(-외국인 명의 불가하다는 문제를 어떻게 극복했다는 것인지 이 단락의 설명만으로는 분명치 않음)

 

그 후 경남기업에서 2층 학교건물을 착공하여 대사과, 한국회관 건물 시공 중 1978 1 28. 한국학교 국민학교 입학식(1-5학년 58)이 거행되었습니다. 오전 10시에 학생, 학부모, 대사관직원과 한인들이 모인 식장에서 대사 축사와 대통령 하사금에 감사를 드리는 등 식순이 진행되던 중 갑자기 대사 사모가 맑은 하늘을 쳐다보며 "사랑하는 우리 호용아! 아픔 없는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있지?? 오늘 한국학교 입학식 날인데 네 이름으로 학교에 운동기구(1,205)를 기증한다. 호용아!! 사랑한다"라며 통곡하자 식장에 모인 학생들과 한인들이 그 아픔을 함께 나누며 식장은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이재설 대사의 둘째 아들 호용(14)이 갑작스런 열병으로 병원에서 치료 중 10일만에 사망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가슴에 묻은 이대사는 한인들의 건강을 염려해 보건사회부로부터 한국인의사 한 명을 대사관에 파견 받았고 그 의사는 1990 5월까지 자카르타 현지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자카르타 한인들이여, 이재설 대사(재임기간: 19743월부터 1978 4 20)를 영원히 잊지 맙시다.

 

예전 한국학교는 재학생이 200여 명이 넘었지만 인니 정부의 정식 학교허가가 나지 않았다는 문제로 1993 2 20일 지금의 JIKS 위치로 이전했고 그 후 예전 한국학교 건물을 한인회에서 사용하던 중 20105월초 대사관 건물을 헐고 대사관을 신축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문제는 구 한국학교 건물이 국유재산이 아니라 한인회 재산이었으므로 이에 반발하여 대사관(당시 김호영대사) 2010518일 민원을 넣으면서 대사관과 소리 없는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김영선 대사 시절에도 5회 추가 민원을 넣었고 2014422일 국민권익위원회(이성보 위원장)에 접수한 민원은 핑퐁이라도 치듯 516일 외교부감사실로 이관되었습니다. 그래서 광화문 외교부감사실로 찾아가 박현아 행정관과 면담했더니 523일 다시 자카르타 대사관으로 민원을 이첩하는 등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최초 대사관에 민원을 넣은 후 410일이 흐른 2014528일 대사관 박영식 공사로부터 마침내 답을 받았습니다. 대사관의 변명은 "구 한국학교에 정부예산이 투입"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신축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관 조감도

 

너무나 황당한 변명에 재차 조태영대사 부임 직후 대사관에 다시 민원을 제기하며 정부예산이 언제 얼마를 무슨 용도로 투입했는지 증거를 댈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대사관은 굳게 닫혀버렸고 2014 12 20일 청와대(박근혜대통령, 민원비서실장, 외교비서실장)에 민원을 넣자 2015 2 6일 대사관(조태영 대사) 측은 정부예산이 투입된 부지라는 부끄러운 변명만 되풀이할 뿐이었습니다. 코리아센터에서 마주 보이는 대사관 건물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이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1976년 유치재단(13개 회사)에서 기증한 대사관 부지의 현재 시가는 예전의 구입가에서 75배 오른 미화 3,500만 불 상당입니다. 대한민국이 힘들 때 도왔던 현지 한인들과 기업들에게 지금의 대사관은 눈과 귀를 막고 "옛날 일은 우리 알 바 아니야라며 오리발을 내밀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해외공관이 나가 있는 150여 개 국가 중 대사관 부지를 한국회사들이 기증한 곳은 오직 인도네시아뿐입니다. 재외공관은 해외동포들의 힘이 되어 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대사관 스스로 몰염치한 횡포로 한인들의 쉼터를 포탈해 간 것입니다.

 

100여 년 전 일본에게 빼앗긴 우리나라 유물들도 찾아오는 시대인데 6년 전 대사관에 빼앗긴 한인들의 자산을 되찾아야 합니다. 더욱이 대사관부지에 22층을 건축할 수도 있었는데 겨우 5층으로 건축하여 결과적으로 한국문화원을 임대료가 하늘을 찌르는 현재 Equty Tower 건물에 세 들어 있게 한 것은 국가재정에 손실을 입히는 일이었음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과거 구 한국학교건물을 철거하고 영사동 건물을 세울 당시 한인회는 무엇을 했었나요 "대사관 부지를 기증받고서도 무슨 염치로 한인회관 경내에다 영사동을 지으려 하느냐?"고 멱살잡이라도 했어야 했을까요? 2013 3 25일 저녁 6시 반 한양가든 식당에서 대사관이 주최한 저녁식사에 김영선대사로부터 직접 초대를 받고 대사의 바로 건너편 자리에 앉았습니다. "송사장께서 예전 대사관 관련자료를 많이 소장하고 계시다는 얘기를 듣고 특별히 초대했습니다. 그리고 마침 대사관에서 외교 40년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편집위원으로 모시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갖고 계신 값진 자료들을 대사관에 기증하시지 않겠습니까?” 기증을 약속하자 대사님은 축배를 제의했습니다.

 

다음날 김기혁 사무관이 내 사무실에 와서 많은 기록자료들을 보던 중 난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서기관 여기 이재설 대사가 청와대에 보낸 내용을 보시요. 내용 중에는 구 한국학교 부지 및 건물이 인니 규정상 어쩔 수 없어 형식적으로 대사관부지로 되어 있지만 실 사용권은 영원히 한인회에 있다고 되어 있소." 그 말이 끝나자마자 김 사무관이 자리를 뜬 후 대사관은 감감무소식이 되었고 구 한국학교 관련자료가 대사에게 보고된 후 한양가든에서 했던 모든 약속들도 없던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한국학교 부지 1,270 m²의 현 시가는 약 7백만 불입니다. 대사관의 불법행위를 행정소송을 걸면 100% 이긴다는 외교부 출입 변호사의 자문도 이미 받아 놓은 상태입니다. 그는 제 개인이 아닌 한인회 명의로 행정소송을 제기하라고 했습니다.

 

존경하는 한인 여러분!

캄보디아의 한인은 3,500여명뿐인데 20151023일 한인회관 준공식이 있었습니다.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도 우리 한인회를 응원합시다. 지금도 한인회는 수많은 한인들을 대표하는 모임으로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인니인들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한인회는 경비원의 눈치를 살피고 출입증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주인니 대사관 직원들도 예전의 역사를 공부하세요.

2001124일 코리아센터 6층을 몰래 매각하려던 시도를 저에게 들킨 적도 있습니다. 국유재산이라며 외무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과거 대사관에 근무했던 자에게 95천만 루피아에 매각한다는 부동산 매매계약서를 맺은 것입니다. 은행 대사관 구좌에 10% 계약금을 납부한 증빙 등 모든 자료를 어느 양심 있는 대사관 직원을 통해 전달받고 다음날 곧바로 6층 매각 절대 불가함을 천명했고 만일 매각을 강행하면 매입자는 코리아센터 건물외부에서 6층에 사다리를 걸고 오르내려야 할 것이라는 내용의 공문을 김재섭 대사 앞으로 발송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대사관은 대사관 업무를 방해하는 자는 국내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위협성 공문으로 응수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며칠이 지난 후인 12 12일 대사 집무실에서 대사와 시평수 영사의 사과를 받고 대사의 간청으로 20021 10일 저의 회사를 포함해 5개 회사가 6층을 95천만 루피아에 매입했습니다.

 

그런데 14년이 지난 2016년 초에 이번엔 코리아센터 5층의 매각을 시도했습니다. 부동산 평가료와 신문광고비 등 엄청난 비용을 치르면서 6번 신문공고 했으나 결과는 비참했고 국고만 손실될 뿐이었습니다. 2017년 초 어느 신문사에서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대사관 문턱이 높다는 한인들의 원망은 66.7%로 하늘을 찔렀습니다. 문턱만 높은 것이 아니라 대사관 철문이 꽉 닫혀 있는 느낌입니다. 골치 아픈 민원이 접수되면 이리저리 미루면서 본부발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며 달력만 주시하다가 어느 날 때가 오면 훌쩍 떠나버리는 모습을 반복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던 와중에 영사동 별관건축문제로 코리아센터가 시청으로부터 날벼락을 맞기도 했습니다. 2017 2 17일 이후 코리아센터에 입주한 한국 개인회사들은 무조건 다른 곳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공문이 날아온 것입니다. 공문을 받은 후 코리아센터 재단이사장 자격으로 곧바로 수신 조태영 대사-참조 양영사 앞으로 대사관에 민원접수 시키면서 영사동 건축허가서(IMB)를 보여달라 했더니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룬 끝에 공문접수 419일만에 김창년 공사 사무실에서 영사동 건축허가서를 보게 되는 감격을 맛보았습니다. 공무지연으로 기네스북에라도 오를 일입니다.

 

얼마 후 72주년 광복절행사가 있을 테고 금년 중 한인회에서 많은 한인들이 모여서 대한민국 외교부로부터 해방된 한인들의 땅을 찾은 기념행사를 열리기를 오늘 성당에서 천주님께 간절히 기도를 올렸습니다.

 

한인 여러분들.

두서 없는 긴 글 노여워 마시고 재인니 한인회 격려해주시고 많은 후원을 해주시기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송재선





(-영사동 건축허가서를 본 것만으로 코리아센터 입주업체들이 시청으로부터 받은 이전 압박을 더 이상 받지 않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설명이 부족함)



***자카르타 코리아센터 부지에 대해 송재선님이 인도네시아 비즈니스 단톡방에 올린 글을 오탈자 및 문맥수정한 내용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