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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기사번역

정치적 풍운아 위란토 전 국방장관의 행보

beautician 2023. 2. 21. 11:25

하누라당 창립한 위란토 전 국방장관, 탈당하고 국민수권당(PAN) 입당 예정

 

2020년 11월 서부자바 보고르궁에서 위란토(왼쪽)이 스리 물야니 인드라와티 재무장관(가운데), 수하르소 모노아르파 국가개발기획부 장관 (Antara/Sigid Kurniawan)

 

하누라 당의 중앙집행위원회 이나스 나스룰라 주비르(Inas Nasrullah Zubir) 위원장은 당을 창설한 당사자인 위란토가 현 당 지도부와 오랜 갈등을 겪은 끝에 국민수권당(PAN)으로 당적을 옮긴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모든 인도네시아인들이 스스로 정치적 선택을 할 권리가 있듯 위란토가 국민수권당으로 옮기기로 한 결정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이제 위란토를 품는 특별한 행운을 얻게 된 국민수권당이 그로 인해 정치적 세를 늘려갈 수 있는 호기를 맞았다고 논평했다.

 

이나스는 위란토가 하누라당에 엄청난 기여를 한 인물이라고 추겨 세웠지만 2019년 총선 당시 하누라당이 형편없는 성적을 냈을 때 가장 앞장서 위란토를 비난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위란토가 하누라당 창당에 크게 기여하고 전국 시, 군, 구에 걸쳐 수많은 의원들을 배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나스 자신도 위란토가 없었다면 국회에 입성할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위란토의 탈당이 하누라당의 큰 손실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수하르토 정권의 마지막 통합군사령관이었고 하비비 정권 국방장관을 지낸 위란토는 수하르토의 사위였던 쁘라보워 수비얀토를 1998년 군에서 퇴출시키며 그와 악연을 쌓았다. 이후 정계에 진출한 그는 2004년 대선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신 후 하누라당을 창당했다.

 

하누라당은 2009년과 2014년 연거푸 국회에 입성했으나 2019년에는 형편없는 전국득표율을 보이며 의석을 단 한 개도 차지하지 못했고 이러한 총선참패는 이후 우스만 삽타 오당(Oesman Sapta Odang) 당대표와 위란토 사이의 날 선 책임공방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오히려 당내 분쟁이 먼저 일어나 2019년 총선 참패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당시 하누라당 지도부가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서로 당권을 장악하려는 당권투쟁에 너무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2019년 총선 이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위란토를 대통령 자문위원회(Wantimpres) 위원장으로 지명했는데 그 배경이 사뭇 의미심장하다. 대통령은 원래 그 자리를 당시 우스만 당대표에게 제안했는데 그 대신 정치적 중립을 담보하기 위해 하누라당 당대표직을 포기할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 하지만 그때 우스만은 대통령 자문위원장보다는 하누라당 당대표로 남기를 고집했으므로 그 자리가 결국 위란토에게 돌아간 것이다.

 

오랫동안 야당으로 활동했던 국민수권당(PAN)은 2021년 뒤늦게 조코위 연정에 참여했다. 국민수권당에 오래 몸담아온 얀드리 수산토(Yandri Susanto)에 따르면 오는 2월 26일 중부자바 스마랑에서 2024 대선전략을 논의하는 국민수권당 실무회의를 열리는데 개막식에 조코위 대통령의 연설이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출처: 자카르타포스트
https://www.thejakartapost.com/indonesia/2023/02/18/a-great-loss-hanura-regrets-wiranto-departure-to-pa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