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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방문

성지 순례 - 벙커원

beautician 2013. 4. 4. 15:13

 

 

 

2012년 11월 말에 한국출장하면서 겸사겸사 성지순례하는 마음으로 혜화동에 있던 벙커원을 찾았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대선을 불과 3주쯤 남겨둔 시점에 정봉주 선배를 정권의 양심수로 빼았긴 '나꼼수'는 수도 셀 수 없는 고소고발의 소나기를 맞으면서도 굽히지 않고 막판 기염을 토하고 있던 시절이었죠.

 

일로 인해 찾은 한국의 겨울은 더욱 살을 에어 왔는데 인터넷을 검색해 위치를 파악하고 다시 인근에서 묻고 물어 막상 벙커원 앞에 다다랐을 때에는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매우 겸연쩍게 느껴졌습니다. 카페 안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20대, 30대 초반의 우아한 겨울복장의 젊은 사람들이었고 겨울이 없는 나라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후 돌아온 나는 변변한 외투 하나 없어 마치 노숙자들이나 입고 다닐 후줄근한 버건디색 패딩자켓을 입은 중년의 모습이었거든요. 애당초 초창기에 딴지일보와 연을 맺어 처음 홍대앞 딴지일보 사옥을 찾았던 20세기 막판에 난 이미 30대 후반에 들어서는 중이었고 김어준 총수도 당시 30대 초반이었죠. 기자도 독자도 대부분 김총수보다 어린 사람들이었으니 난 그 당시부터 이미 old timer였습니다.

 

게다가 정권의 몰염치에 항거하며 높인 목소리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와있다고 생각한 그곳에 평생 투사인 적도 없었고 오히려 인생 대부분 정치에 무관심한 채 살았던 내가 들어서는 것이 마치 뒤늦게 투사 코스프레를 하려는 후안무치처럼 느껴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마침 그날은 김미화 누나의 '나꼽살' 공개녹음이 있던 날이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는 발길을 돌렸죠. 한국에서는 어디에서나 유세가 한창이었는데 유권자의 과반 이상이 문재인의 승리를, 또는 안철수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던 시절, 정작 내가 보았던 유세장은 부평역 앞 새누리당의 유세였고 단상 위에는 수많은 연예인들이, 단상 밑에는 군복을 입은 늙은 어버이들이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며칠 후 다시 벙커원을 찾았을 때에도 난 결국 그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발길을 돌리기 전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에 의도하지 않았지만 벙커원에서 나오던 일단의 사람들이 찍혔고 나중에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 본 후에야 그중 한 사람이 나꼼수의 한 축인 시사in 주진우 기자라는 것을 알았어요.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당시 날 멀리서 발견했을 주기자는 당시 공권력의 날선 감시를 한껏 받고 있던 시절이었으니 내 후줄근한 모습에 잠복근무중인 경찰 취채팀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광기 넘치던 대선이 막을 내린 지도 반년이 가까와지고 해외를 떠돌던 주기자와 김총수가 돌아오자마자 공권력의 보복이 시작되려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말이죠. 남북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늘 일촉 즉발의 상황까지 가곤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서로 상생하겠다는 의지가 정말 있는지 피차 신뢰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나꼼수에 보복의 칼날을 빼드는 정권의 속마음을 짐짓 들여다 보자면 최소한 한반도 남쪽 그 한줌도 안되는 공간에서조차도 힘있는 인간들은 힘없는 사람들과의 상생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벼락이 내리치고 폭풍우가 몰아치던 시절 실현 가능할지도 모를 놀라운 미래를 보여주면서 우리를, 아니 최소한 그들 목소리에 관심 가졌던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나꼼수팀의 귀환을 바라보며 여러 생각이 드는군요. 어쩌면 한동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야 할지도 모를 그들의 안위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