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인니 민속과 주술 239

[수마트라 민화] 린둥불란과 람분 빠머난

린둥불란(Lindung Bulan)과 람분 빠머난(Rambun Pamenan) 이야기 옛날옛적 서부 수마트라에 린둥불란(Lindung Bulan)이란 이름의 아름다운 과부가 두 명의 아들을 키우며 살고 있었습니다. 장남의 이름은 렌도 삐낭(Rendo Pinang)이었고 둘째는 람분 빠머난(Rambun Pamenan)이었습니다. 린둥불란은 아이 둘 달린 과부가 되고서도 처녀 시절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는데 오래 전부터 여러 이웃나라에도 소문날 정도의 미모가 전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죽은 후부터 또다시 총각들을 포함한 수많은 남자들이 청혼해 왔지만 린둥불란은 그 어느 것도 수락하지 않고 두 아들을 양육하는 일에만 전념할 것이란 답변을 되풀이해야만 했습니다. 그녀의 소문이 떠루산 쩌..

[무속과 괴담 사이(42)] 나가 바루끌린팅 전설

나가 바루끌린팅 전설 지난 라라먼둣 에피소드에서 끼 나야다르마가 스페인 갑옷을 입은 아디빠티 쁘라골로 2세를 쓰러뜨릴 때 사용한 똠박 바루끌린팅(Tombak Baru Klintin), 즉 ‘바루끌린팅 창’ 기원에 대한 전설입니다. -------------------------- 아주 오래 전 옛날에 드망 망이란(Demang Mangiran) 마을에서 깜짝 놀랄 만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남자를 접한 적 없는 처녀가 임신해 아홉 달 하고도 하루 만에 어른 팔뚝 만한 뱀 한 마리를 낳은 것입니다. 그 처녀는 미을 촌장인 끼 다망 딸리왕사(Ki Damang Taliwangsa)의 딸이었습니다. 그는 딸이 뱀을 낳았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마을 사람들 얼굴을 볼 낯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딸에게 아기를 갖다 버리라고..

[무속과 괴담 사이(41)] 라라먼둣: 담배 피는 정조의 아이콘

라라먼둣: 담배 피는 정조의 아이콘 오래 전 자바섬 북쪽 해안, 정확히는 중부자바 빠띠(Pati) 지역의 떨룩찌깔(Teluk Cikal)이란 어촌은 아디빠티 쁘라골로 2세(Adipati Pragolo II)가 다스리던 곳으로 마타람 술탄국의 영토였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마타람의 세 번째 군주 술탄 아궁(Sultan Agung)의 시대. 아디빠티 쁘라골로 2세는 마타람 시조 스노빠티의 증손자 뻘이었지만 선대의 복잡한 권력투쟁의 역사 속에서 마타람 왕실과는 대체로 척을 지고 있었습니다. 떨룩찌깔 마을에는 라라먼둣이라는 여인이 살았습니다. 그녀는 마치 그림 속에서 방금 튀어나온 것 같은 아름다운 외모뿐 아니라 올곧고 강단있는 성품으로 이웃들의 사랑과 감탄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려고 많은 ..

북부 술라웨시의 멧돼지 사냥꾼 이야기

라웡고(Lawongo)와 나뽐발루 섬(Pulau Napombalu) 이야기 북부 술라웨시 까바루안 섬(Pulau Kabaruan)에 라웡고(Lawongo)라는 잘 생긴 청년이 살았습니다. 그는 멧돼지 사냥꾼이었는데 피리를 부는 데에도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을사람들 사이에서는 사냥보다 피리부는 재주가 더욱 유명할 정도였고 많은 여성들이 그에게 관심과 호감을 표하곤 했습니다. 예술가들이 사냥꾼보다 사랑받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아직 마음에 드는 여성을 만나지 못한 그는 종종 섬을 순회하면서 피리실력을 선보이며 그곳 여성들을 만나보려 했습니다. 어느날 그가 다마우 마을(Desa Damau)에 도착하자 그의 소문을 익히 듣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그의 피리연주를 들으려고 모여들었습니다. 거기엔..

[무속과 괴담 사이(39)] 안데안데루뭇의 왕자비 간택

안데안데루뭇(Ande Ande Lumut)의 왕자비 간택 옛날 옛적 동부자바에 두 개의 쌍둥이 왕국이 있었는데 그것은 자옝느라가 왕(Raja Jayengnegara)이 다스리는 젱갈라 왕국(Kerajaan Jenggala)과 자옝라나 왕(Raja Jayengrana)이 다스리는 끄디리 왕국(Kerajaan Kediri)이었습니다. 이들 두 왕국은 예전에는 까후리빤 왕국(Kahuripan)을 이루고 있었는데 아이를랑가 왕이 임종할 때 까우리빤을 젱갈라와 끄디리 두 개의 왕국으로 나누어 주면서 서로 혼맥을 맺어 화목하게 지내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자옝느가라 왕의 아들 빤지 아스마라방운(Panji Asmarabangun)이 자옝라나 왕의 딸 데위 스까르타지(Dewi Sekartaji)와 혼인하게 됩니..

[미나하사 민화] 시가르라키와 림밧 이야기

[미나하사 민화] 시가르라키와 림밧 이야기 옛날 북부 술라웨시 미나사하 지역 똔다노(di Tondano)에 시가르라키(Sigarlaki)라는 용맹한 사냥꾼이 살았습니다. 그는 창을 잘 쓰는 것으로 유명했고 그가 한번 마음을 먹고 창을 던지면 누구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시가르라키는 림밧(Limbat)이라는 이름의 충성스러운 하인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시가르라키가 시키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했습니다. 하지만 사가르라키가 아무리 위대한 사냥꾼이라 해도 짐승을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운이 따르지 않았던 날, 가뜩이나 기분이 상해 집에 돌아오는데 림밧이 달려나와 집에 도둑이 들어 비축해 놨던 짐승 고기를 모두 도둑맞았다고 보고하는 것을 듣고 그는 마침내 머리 끝까지 치밀어 ..

[미나하사 민화] 하늘과 맞닿은 신의 통로 로꼰산

[미나하사 민화] 로꼰 산과 끌라밧 산의 전설 옛날옛적 지상은 온통 산과 산맥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술라웨시 북부 미나하사(Minahasa) 지방도 마찬가지로 높고 낮은 산들이 즐비한데 산들 중엔 끌라밧(Kelabat), 소뿌탄(Soputan), 로꼰(Lokon), 두아 수다라(Dua Sudara), 마하우(Mahawu),땀뿌수(Tampusu), 똘랑코(Tolangko), 까웽(Kaweng), 심벌(Simbel), 렝꼬안(Lengkoan), 마사랑(Masarang), 까와딱(Kawatak) 등이 있고 산맥들 중엔 렘베안(Lembean), 깔라위란(Kalawiran), 꾸머럼부아이(Kumelembuai) 등이 있습니다. 산과 산맥의 이름은 그 성격에 부합하곤 했는데 예를 들어 마하우 산은 종종 화산재를 ..

[서부 수마트라 민화] 쌍둥이 호수(Danau Kembar) 전설

쌍둥이 호수(Danau Kembar) 속 큰 뱀의 전설 쌍둥이 호수(Danau Kembar)는 서부 수마트라 주 솔록군 러마 구만티(Lemah Gumanti) 지역과 름방 자야(Lembang Jaya) 지역에 걸쳐 위치하고 있습니다. 빠당 시내에서 60킬로미터, 솔록 시내에서는 5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옛날에 나무판과 기둥을 만드는 나이 많은 목수 니니악 가당 바한(Niniak Gadang Bahan)이란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는 몸집도 컸고 사용하는 도끼도 엄청나게 컸습니다. 도끼날만 해도 웬만한 소쿠리 크기였으니까요. 그는 숲에 들어갈 때마다 늘 도끼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니니악은 일주일에 밥을 딱 한 번 먹었는데 먹는 양이 큰 말 통 한 개 정도로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는 좋은 나무를 구하..

[남부 술라웨시 민화] 마카사르(Makassar) 도시이름의 유래

마카사르(Makassar)의 유래 남부 술라웨시 주도인 마카사르(Makassar)는 발음상 중간에 거칠다는 의미의 ‘까사르(kasar)’라는 단어도 들어 있고 술라웨시 사람들이 자바사람들에 비해 좀 뻣뻣하고 직선적이니 아마도 ‘거친 사람들이 사는 곳’ 정도의 어원이 아닐까 추정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16세기 고와-딸로 왕국(Kerajaan Gowa Tallo) 여섯 번째 왕의 꿈과 관계가 있고 좀 더 이슬람적 뉘앙스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고와 딸로 왕국은 고와 왕국과 딸로 왕국이 결합된 것으로 처음엔 협정에 의해 각각의 영토에 각각의 왕이 각각 다스렸으나 이후 한 개의 왕국으로 통일됩니다. 마카사르라는 이름은 14세기 음뿌 쁘라빤짜(Mpu Prapanca)가 지은 나가라끄레타가마(Nagarakretag..

[동부 깔리만탄 민화] 발릭빠빤(Balikpapan)의 기원

발릭빠빤(Balikpapan)의 기원 옛날 동부 깔리만탄 따나 빠시르(Tanah Pasir) 지역엔 현명하고 지혜로운 아지 무하마드 (Aji Muhammad) 왕이 다스리는 큰 왕국이 있었습니다. 농업과 어업이 산업의 중심인 이 왕국은 왕의 뛰어난 영도로 평화 속에서 번영을 거듭했습니다. 왕국의 넓은 영토 속엔 경관이 수려한 해변의 만(灣)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아지 무하마드 국왕의 딸 아지 따띤(Aji Tatin) 공주는 유일한 왕위 후계자였으므로 부왕과 왕비의 사랑이 그녀에게 쏠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수십 명의 시녀들이 주변에서 공주가 필요한 것들을 처리하고 보살폈습니다. 아지 따띤 공주는 성년이 된 후 꾸따이 까르타느가라 왕국(Kerajaan Kutai Kartanegara)의 귀족 자제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