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인니 민속과 주술 239

아쩨의 또 다른 용 전설: 알루에 나가(Alue Naga)

알루에 나가 (Alue Naga) 고사 알루에(Alue)란 북부 수마트라 아쩨 방언으로 강의 지류나 늪을 말합니다. 나가(Naga)란 인도네시아어로 용(龍)을 뜻하므로 알루에 나가(Alue Naga)란 나가 ‘용의 늪’, ‘용의 습지’ 또는 ‘큰 뱀의 지류’ 같은 뜻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아쩨에는 실제로 이런 지명을 가진 곳이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전설에 등장하는 용은 서양의 날개 달린 드래곤이나 우리가 잘 아는 동아시아의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그 용이 아니라 대개는 큰 뱀을 뜻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녹색용’이라 부르는 생물은 실제로 용이 아니라 거대한 뱀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야기가 이해됩니다. 어느날 술탄 므라(Sultan Meurah)는 꾸타 라자(Kuta Raja) 인근 마을 주..

뚜안 따파와 뿌뜨리 나가 전설 (아쩨 민화)

[아쩨 민화] 남부 아쩨에 남은 거인의 발자국 따빡뚜안(Tapaktuan)은 남아쩨군(Kabupaten Aceh Selatan)의 군청 소재지입니다. 그곳에는 많은 매력적인 관광지들도 있고 신비로운 전설들도 깃들어 있습니다. 따빡뚜안은 꼬따나가(Kota Naga), 즉 ‘용의 도시’라고도 불립니다. 이 도시가 용의 전설과 관련되어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죠. 그곳엔 거인의 발자국 같은 것이 바위 위에 찍혀 있어 사람들 이목을 사로잡는데 따빡 뚜안 따파(Tapak Tuan Tapa)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뚜안 따파의 발자국’이란 뜻이죠. 그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색상이나 모양이 어딘가 인의적 손길이 닿은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그게 정말 뚜안 따파라는 엄청난 거인의 발자국이라고 애써 믿어 봅니다...

[무속과 괴담 사이 (36)] 뿌뜨리 두융 전설 (Legenda Putri Duyung)

뿌뜨리 두융 전설 “이 생선 너무 맛있어요!” 첫째 아들이 그렇게 말하자 어머니도 미소를 지었습니다. 원래 생선은 그들 밥상에 자주 오르는 메뉴가 아니었습니다. 가장인 아버지가 하는 일은 옥수수와 고구마 밭을 가꾸는 것이었으니까요. 당연히 그들의 주식은 옥수수와 고구마였습니다. 하지만 그날 아버지는 아침 일찍부터 인근 바닷가 마을 친구 부탁을 받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허리 깊이까지 바다 속에 들어가 그물 당기는 일을 돕고 그 대가로 큼직한 생선 세 마리를 받아왔던 것입니다. 아이들은 생전 처음 보는 생선반찬에 눈이 휘둥그레졌고 어머니가 부엌에서 생선을 다듬고 굽는 동안 내내 옆에서 침을 흘렸습니다. “생선 더 먹어도 돼요?” 생선 한 마리가 순식간에 뼈만 남자 둘째가 눈치를 보며 물었습니다. “물론이지...

[서울신문 스크랩] 인도네시아 ‘꺼자웬’의 중심 족자카르타

[이슬람 문명과 도시] (24) 인도네시아 ‘꺼자웬’의 중심 족자카르타 입력 :2006-12-05 00:00ㅣ 수정 : 2006-12-05 00:00 지난 5월 족자카르타 지역의 지진으로 4만여명의 사상자가 났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필자는 그곳에서의 유학시절을 떠올렸다.풍성한 문화유적과 다양한 유학생이 어우러진 족자카르타는 ‘자카르타’ ‘아쩨’와 함께 특별주이다. ▲ 서까뗀 축제에 구름처럼 모인 족자카르타 시민들 모습. 1945년 8월17일 독립준비위원회 회장과 부회장이었던 수카르노와 핫따가 독립과 함께 신생 인도네시아공화국 건설을 선언했을 때, 족자카르타의 술탄인 하멍꾸부워노 9세가 가장 먼저 지지를 선언하는 등 국가 건설에 크게 기여했다. 그 보답으로 인도네시아 정부는 족자카르타를 하나의 주로 승인하면..

[서부자바 민화] 시까바얀(Si Kabayan)의 빛 갚기

시까바얀(Si Kabayan)의 빛 갚기 아랍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려 큰 빚을 지게 된 시까바얀(si Kabayan)은 매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자를 감당할 수 없어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젠 빚을 갚기 위해 팔 만한 변변한 살림살이조차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에게 아이디어가 반짝 떠올랐습니다. 빚을 단 번에 갚을 뿐 아니라 고리대금업자들을 혼내 줄 방법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계획은 아내에게 말하고 동의를 얻어냈습니다. 아내는 동의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남편을 돕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목욕통을 포도주로 채우고 그 주변에 까뿍(kapuk) 흰 솜들을 뿌려 두었습니다. 시까바얀은 포도주에 몸을 담근 후 젖은 몸으로 까뿍 솜 위를 굴러 온몸이 흰 솜에 뒤덮여 버렸습니다..

자바 이슬람을 이해하기 위한 끄자웬(Kejawen) 입문

끄자웬(Kejawen)이란? 끄자웬(Kejawen)이란 자바족, 그리고 자바섬에 사는 다른 민족들이 가진 삶에 대한 시각, 즉 생활철학이라 할 수 있다. 즉 종교라기 보다는 문화에 가깝다. 끄자웬은 자바 사람들이 삶을 바라보는 관점, 철학의 집합체로서 각 시대를 풍미한 여러 종교들과도 충돌없이 병행하며 호환될 만큼 보편성을 품고 있다. 끄자웬을 집대성한 문헌들도 남아 있으나 생활 속에 녹아 들어 관습이 되었지만 종교의 경지까지 이르진 않았다. 그래서 절대신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을 가진 이슬람이나 기독교 같은 다른 종교들과도 어우러질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개신교도를 사이에서도 근근히 명맥을 잇고 있는 한국의 점, 주역, 무속사상과 유사한 위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끄자웬은 자바의 철학자들에 의해 특..

짝퉁 선녀와 나뭇꾼: 선녀들의 연못

[남부 깔리만탄 민회] 선녀들의 연못 (Telaga Bidadari) 옛날옛적에 아왕 수크마(Awang Sukma)라는 잘생긴 남자가 광야를 주유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숲속을 지나면서 많은 생물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을 즐겼고 결국 숲 속 깊은 곳에 집을 짓고 살게 되었습니다. 숲 속에서의 삶은 평화로웠습니다. 그곳에서 오래 살다 보니 그 지역의 우두머리인 다뚜(Datu)로 임명되기도 했습니다. 숲 속에 혼자 사는 사람에게 이장 감투를 주는 이상한 나라였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그는 한달에 한 번 자신이 관리해야 하는 지역을 돌아보아야 했는데 그러다가 맑은 물이 모였다가 흘러가는 숲속 연못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연못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은 나무 그늘 밑에 놓여 있었고 많은 새들과 곤충들이 그곳에 모이거나..

라와 쁘닝(Rawa Pening) 전설

바루끌린팅 전설의 짝퉁 후속편: 라와 쁘닝(Rawa Pening) 이 이야기는 나가 바루끌린팅, 큰 뱀의 전설에서 이어지는 후속편 성격입니다. https://blog.daum.net/dons_indonesia/3191 내가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착한 뱀 나가 바루끌린팅 전설 아주 오래 전 옛날에 드망 망이란(Demang Mangiran) 주민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남자를 접한 적 없는 처녀가 임신해 아홉 달 하고도 하루 만에 어른 팔 blog.daum.net 바루끌린팅 전설의 모든 버전들이 늘 비극적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중부자바 라와 쁘닝(Rawa Pening)이란 늪지에 대한 전설에도 바루끌린팅이 등장해 산을 휘감는데 여기 나오는 산은 머라삐산이 아니라 뗄로모요 산(G..

띠문마스(Timun Mas) 동화 - 삼발 떼라시의 위력

[인도네시아 동화] 띠문마스(Timun Mas)와 부토이조(Buto Iko) 띠문마스 이야기는 오래 전에 처음 번역했던 인도네시아 동화입니다. 좀 살을 붙여 스토리를 입체적으로 구축했으면 좋을 뻔했지만 당시엔 원문에 적힌 대로만 번역해서 내용이 좀 짧습니다. 하지만 여섯 살 소녀와 녹색거인 부토이조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꽤 박진감 넘칩니다. 띠문마스는 ‘황금 오이’라는 뜻의 여주인공 이름이고 부토이조는 거대한 녹색 덩치에 무시무시한 인상…… 여기까지는 대략 어벤져스 헐크와 인상착의가 비슷하지만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눈동자와 삐죽이 뻗어 나온 송곳니, 폐수처리장 같은 고약한 몸냄새를 풍기는 명실공히 인도네시아의 재물주술을 대표하는 영적 존재입니다. 하지만 동화나 민화에 등장하는 부토이조는 귀신이 아니..

[무속과 괴담 사이 (34)] 금빛 달팽이 께옹마스(Keong Mas) 전설

금빛 달팽이 께옹마스(Keong Mas) 전설 동부자바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화 께옹마스의 전설은 상꾸리앙, 띠문마스, 뿌뜨리 두융 등과 함께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민화입니다. 처음 들어본 한국인들에게도 이미 어디선가 본 듯 친숙한 느낌을 주는 금빛 달팽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옛날 옛적에 꺼르타마르타(Kertamarta)라는 이름의 왕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다하 왕국(kerajaan Daha)을 다스렸습니다.[1] 그에게는 두 명의 아름다운 공주가 있었는데 첫째 딸은 데위 갈루(Dewi Galuh)였고 둘째 딸은 찬드라 끼라나(Candra Kirana)였습니다. 두 사람은 어머니가 서로 다른 이복 자매였지만 행복하고 풍족하게 함께 자라며 우애를 나누었습니다.[2] 어느날 까후리빤 왕국(keraja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