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인니 민속과 주술 239

[무속과 괴담 사이(38)] 반유왕이(Banyuwangi)의 기원

향기로운 물, 반유왕이(Banyuwangi)의 기원 옛날 자바섬 동쪽 끝자락에 한 왕국이 있었습니다. 그곳의 왕세자 라덴 반뜨랑(Raden Banterang)은 전장에서는 호랑이처럼 용맹한 장수였고 평상시엔 사냥에 빠져 사는 천상 호걸 한량이었습니다. 어느 날 라덴 반뜨랑 왕자가 여느 때처럼 시종들을 거느리고 사냥을 나갔는데 숲 속에서 사슴 한 마리가 일행 앞을 빠르게 지나가자 급히 그 뒤를 쫓다가 일행과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나무와 덤불을 헤치며 흔적을 쫓았지만 결국 사슴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지친 왕자가 일행과 합류하기 위해 길을 찾던 중 숲속에서 만난 개울물이 너무나도 맑고 깨끗해 그 물을 마시니 모든 피로가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그 개울은 꽤 폭이 넓고 깊은 연못 같은 곳을 지나 하류로 흐르면서 ..

[술라웨시 동남부 민화] 인다라 삐따라아와 시라아빠레 이야기

인다라 삐따라아와 시라아빠레 이야기 (Kisah Indara Pitaraa dan Siraapare) 옛날옛적 술라웨시 동남부의 작은 마을에 한 부부가 살았는데 지긋한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태에 아이가 들어섰습니다. 출산이 가까워지면서 배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점점 심해졌는데 부부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걱정했지만 다행히 정상분만이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막 태어난 아기들은 쌍둥이였고 그들은 놀랍게도 각각 오른손에 성유물 끄리스 단검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 끄리스 단검이 임신 중이던 산모의 배를 안에서 쿡쿡 찔러 아프게 했던 것입니다. 그걸 견디고 무사히 아기를 분만한 산모가 정말 대단합니다. 부부는 아이들에게 각각 인드라 삐따라아(Indara Pitaraa)와 시라아빠레(Siraapare)라는 이름을 붙..

[동부 깔리만탄 민화] 신령한 물소의 강(Sungai Kerbau Keramat)

신령한 물소의 강(Sungai Kerbau Keramat) 동부 깔리만탄의 마하캄 강(Sungai Mahakam)은 많은 지류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대도시 사마린다를 지나가는 꺼르바우 강(Sungai Kerbau)입니다. ‘물소의 강’이라고 번역되죠. 아마 물소들이 떼를 지어 건너던 강이었던 모양입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수백 년 전 벌어진 한 사건으로 인해 이 강을 지금도 신성시하고 있습니다 14세기 중반 꾸따이 꺼르타느가라 왕국(Kerajaan Kutai Kartanegara)은 아지 마하라자 술탄(Aji Maharaja Sultan)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꾸따이 꺼르타느가라 왕국의 세 번째 술탄으로 역사적으로도 1360년부터 1420년까지 재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자신..

[동부 깔리만탄 민화] 냐뿌와 영리한 모렛

냐뿌와 영리한 모렛 옛날 동부 깔리만탄에 까하얀 강(Sungai Kahayan)으로 흘러드는 시안강(Sungai Sian)이란 이름의 작은 지류가 있었습니다. 그곳 강어귀에는 잘 정돈된 마을이 번영하고 있었고 마을 사람들도 서로 도우며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수적들이 자주 쳐들어와 약탈을 해가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한번 공격을 받으면 가옥들이 모두 부서지고 계단과 기둥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나뒹구는 등 마을은 매번 난장판이 되었고 많은 이들이 죽고 상했습니다. 강도들의 잔혹함에 마을 주민들도 더 이상 가만이 있지 않았습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병장기를 들고 저항에 가담해 강도떼와 치열한 전투가 벌여 마침내 물리칠 수 있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상했습니다. 그때마다 그들은 ..

[발리 민화] 가루다 위스누 끈짜나(Garuda Wisnu Kencana) 전설

[발리 민화] 가루다 위스누 끈짜나(Garuda Wisnu Kencana) 전설 옛날 발리 섬에 레시 까샤파(Resi Kasyapa)라는 현명한 성자가 살았습니다. 그는 두 명의 아내를 들였는데 한 명은 까드루(Kadru), 다른 한 명은 위나타(Winata)였습니다. 까드루는 모든 용들을 낳았고 위나타는 한 마리의 신조(神鳥) 가루다를 낳았습니다. 이 대목에서 용과 가루다를 낳은 까드루와 위나타가 일반 여인이 아니라는 게 분명해집니다. 레시 까샤파는 두 아내에게 공평하게 대했지만 까드루는 언제나 위나타를 질투하고 미워했습니다. 그래서 호시탐탐 위나타를 레시의 가족관계에서 쫓아내기 위해 기회를 노렸습니다. 사실 삼각관계라는 게 언제 어디서든 힘든 일인데 결혼생활을 공식적으로 삼각관계로 만든 시점부터 그 ..

[남부 술라웨시 민화] 슈림프맨과 일곱 공주

새우인간 이라우랑(I Laurang) 옛날 옛적 남부 술라웨시의 한 마을에 한 나이많은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많은 동화와 전설에 등장하는 다른 부부들처럼 이들도 아이가 없어 적적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남부 술라웨시라면 동인도네시아로 나가는 관문 격인 도시 마카사르(Makassar)가 있는 곳입니다. 어느날 밤 그들은 신에게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아기를 허락해 주세요. 새우처럼 생긴 아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신들은 이런 기도만 귀신같이 들어주는 이상한 성격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부인이 곧 임신하여 아기를 출산했는데 새우를 꼭 닮은 남자아기를 낳은 겁니다. 그런데 그게 살아가는 데에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아이는 뭍에서도 물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수륙양용 전천후 기능을 ..

인도네시아 삭티(Sakti)문화의 전형: 시빠힛리다 이야기

시빠힛리다 – 독한 혓바닥(을 가진 녀석) 시빠힛리다(Si Pahit Lidah), 즉 ‘독한 혓바닥(을 가진 놈)’ 이야기는 크게 두 갈래로 흐릅니다. 같은 시빠힛리다라는 사람이 등장하지만 별로 동일인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룬띵(Serunting)’이라는 단어가 한쪽에는 왕자의 이름으로, 다른 쪽에는 도술의 명칭으로 등장하고 있어요. 그 두 가지 이야기를 하나씩 소개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 옛날 남부 수마트라 수미당(Sumidang) 지역에 큰 왕국이 있었고 스룬띵(Serunting)이란 이름의 왕자가 살았습니다. 그는 쉽게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성격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지만 처남 아리아 떠빙(Aria Tebing)과는 대체로 불편한 관계를 가..

살라띠가(Salatiga): 세 명의 죄인

[정리] 살라띠가 도시 이름의 기원 중부자바 살라띠가의 기원에는 스마랑의 두 번째 군수였던 끼 아긍 빤다나란(Ki Ageng Pandanaran)가 연관되어 있습니다. 드막 술탄국이 아직도 중부자바를 석권하고 있던 시절 스마랑도 드막에 속한 지역이었습니다. 당시 수난 깔리자가가 드막 술탄의 고문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수난 깔리자가는 대표적인 이슬람 포교사로 알려진 왈리 송오(Wali Songo) 중에서도 대표격인 인물인데 여러 전설 속에서는 이슬람 학자나 포교사보다는 끄자웬 도사의 면모가 더욱 돋보입니다. 스마랑 군수 끼 아긍 빤다나란은 엄청난 부를 쌓은 상인 출신이었습니다. 부와 높은 관직을 얻게 된 그는 시간이 흐르자 예전 어려웠던 시절을 잊고 자신의 부에 취해 스마랑 백성들의 안위와 복지를 도외시했습..

중국 황제를 물리친 꾸따이 꺼르타느가라

[동부 깔리만탄 민화] 지네의 호수 (Danau Lipan) ‘지네들의 호수’라는 의미의 리빤 호수(Danau Lipan)는 동부 깔리만탄에 있습니다. 정확히는 무아라 까만 지구(Kecamatan Muara Kaman)에 있는데 인도네시아 신수도가 들어서는 꾸따이 꺼르타느가라 군의 훌루 떵가롱(hulu Tenggarong)으로부터 120k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지명 앞에 다나우(danau) 즉 호수를 뜻하는 단어가 있지만 사실 이곳엔 물이 없습니다. 덤불만이 무성할 뿐이죠. 하지만 한때 무아라 까만까지 바다물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곳 해변 가까이에 번잡한 도시가 형성되고 왕국도 건설되었죠. 그곳엔 아름다운 공주가 있었는데 뿌뜨리 아지 버르다라 뿌띠(Puteri Aji Berdarah Putih) 즉..

세빡따끄로가 등장하는 독수리사냥 민화

[남부 술라웨시 민화] 독수리 잡이 남부 술라웨시의 한 왕국에 일곱 명의 공주를 둔 국왕이 살았습니다. 왕국의 전통에 따라 공주가 일곱 명이 되면 왕실의 재앙을 피하기 위해 그 중 하나를 거대한 독수리에게 바쳐야 하는 관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왕실이 대대로 짊어지고 있던 저주이기도 했습니다. 그로 인해 왕의 마음을 초초하고 무겁기만 했습니다. 그는 공주들 중 누구 하나도 잃고 싶지 않았으므로 어떻게 하면 일곱 공주 모두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지 먹지도 자지도 못할 만큼 골몰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한가지 방책이 떠올랐습니다. “독수리 잡기 대회를 열어보면 어떨까? 내 백성들 중 높은 무술실력과 도력을 가지고 저 거대한 독수리를 물리칠 만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 왕은 다음 날 아침 모든 백성을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