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인니 민속과 주술 239

[디엥 고원] 시끼당의 분화구(Kawah Sikidang)

[중부자바 디엥고원] 시끼당(Sikidang) 분화구 고사 중부자바 디엥 (Dieng) 고원에 위치한 시끼당 분화구(Kawah Sikidang – ‘끼당’이란 녀석의 분화구)는 분화구 안에서 용암을 분출하는 것이 아니라 진흙과 가스를 뿜어내는 것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디엥 고원엔 적지 않은 화산 분화구들이 있지만 많은 관광객들이 시끼당 분화구로 몰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옛날옛적 신토 데위(Shinto Dewi)라는 아름다운 공주가 디엥 고원에 위치한 웅장한 궁전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청혼에 성공한 남성들이 없었던 이유는 요구하는 지참금의 액수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입니다. 공주의 자존감이 너무 높았던 것인지, 왕자들의 등을 치려는 것이었는지 몰라도 그래서 좀처럼 혼약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마카사르 민화] 인도네시아식 패왕별희

[마카사르_숨바와 민화] 다뚜 무성과 마이파 데아빠티의 사랑이야기 다뚜 무성(Datu Museng)과 마이파 데아빠티(Maipa Deapat)의 사랑 이야기는 마카사르에서 잘 알려진 민화입니다. 고와 왕국(kerajaan Gowa)의 귀족 다뚜 무성과 숨바와 왕국(Kerajaan Sumbawa) 귀족 가문의 마이파 데아빠티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해 마카사르 시에는 두 사람의 이름을 딴 도로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뚜 무성의 할아버지인 아덴가릉(Addengareng)이 고와 왕국을 침탈해 더 이상 사람들이 편히 살 수 없게 만들어버린 네덜란드 침략자들의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 부득이 바다를 건너 숨바와로 도망가면서 시작됩니다. 때는 이미 고와 왕국이 VOC손에 넘어간지 100년이 지난 시점의 일입니다. ..

[무속과 괴담 사이(37)] 거인들이 멸종한 이유

거인들이 멸종한 이유: 바뚜르 호수(Danau Batur)의 전설 옛날옛적 발리섬에 한 부부가 살았습니다. 두 사람은 결혼한 후 오래도록 아이를 얻지 못했지만 희망을 놓지 않고 언젠가 아이를 갖게 해 달라고 늘 기원했습니다. 그 기도를 들은 신 상향 위디와사(Sang Hyang Widi Wasa)가 곰곰이 생각한 끝에 부부에게 남자아이를 허락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화에서 그렇듯 신이 허락한 아이들은 어딘가 조금씩 하자가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게 뭔지 뻔히 알 테니 시원하게 들어주면 될 텐데 그 간절함을 볼모로 소원을 살짝 비틀어 비슷하게만 들어주는 신들의 변덕이 늘 문제입니다. 아기는 폭풍성장을 했습니다. 그는 남다른 식욕을 가지고 있어 아직 아기인데도 성인 열 명이..

찌레본의 뻴렛주술 사례

[뻴렛주술] 바리딘과 수랏미나의 사랑 이야기 옛날 찌레본에 바리딘(Baridin)이란 이름의 노총각이 살았습니다. 못생기고 더러운 행색의 바리딘은 복왕시(Mbok Wangsih)라는 가난한 과부의 아들이었습니다. 바리딘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장이 되어 일을 하며 어머니를 봉양하고 생계를 이었습니다. 문제는 그가 찌레본에서 가장 부유한 집안의 딸 수랏미나(Suratminah)를 짝사랑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예쁘고 부유한 집안의 고명딸이 바리딘 같이 못생기고 가난한 남자에게 시집올 리 없었습니다. 수랏미나에게 마음을 뺴앗긴 바리딘은 어머니에게 수랏미나 집안에 청혼을 넣어 달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 집안에서 바리딘의 청혼을 받아줄 리 없다고 거절했지만 바리딘은 집요하게 계속 부탁했습니다. 그는..

[리아우 민화] 말하는 바위 바뚜 바땅꿉(Batu Batangkup)

말하는 바위 바뚜 바땅꿉(Batu Batangkup) 지금의 리아우주 힐리르의 인드라기리 지역에 있는 한 마을에 막미나(Mak Minah-미나 아주머니)라는 과부가 살았습니다. 그녀에겐 두 아들과 딸 하나가 있었는데 첫째와 둘째 아들은 우뚜(Utuh)와 우찐(Ucin)이란 이름이었고 막내딸은 디앙(Diang)이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막미나 혼자 세 아이를 키웠는데 이미 나이가 많았음에도 열심히 일하며 아이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 청소와 빨래를 마치면 밥을 지어 놓은 후 숲속으로 들어가 땔감용 나무를 해와 시장에 팔았습니다. 막미나와 아이들은 나무 판 돈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미나의 아직 어린 세 아이들은 말을 잘 듣지 않는 게으름쟁이들이었습니다. 막미나는 늙어가..

먼티코 버르뚜아 - 톰과 제리의 기원

[아쩨 민화] 먼티코 버르뚜아(Mentiko Betuah) 옛날에 한 부유한 왕이 살았습니다. 그는 백성들로 인해 즐거워했고 늘 관대한 마음으로 지혜로운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왕과 왕비는 아직 아기를 갖지 못해 부부생활을 쓸쓸하고 적막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중 왕실의 자문관 중 한 명이 강 상류의 신령한 장소가 있으니 그곳으로 올라가 기도를 올려 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여 왕은 왕비와 함께 강을 따라 상류로 올라갔습니다. 그곳은 왕국에서 아주 먼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강을 건너고 산을 오르내리며 끝도 없는 정글을 헤치고 나가는 여정을 지났습니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왕의 일행은 곧바로 아기를 갖게 해달라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들이 천신만고 끝에 다시 궁전에 돌아온 후 강의 수원지에서 드린 기도..

[남부 깔리만탄 민화] 뿌뜨리 준중 부이(Putri Junjung Buih)

강의 거품 속에서 태어난 신비로운 공주 - 깔리만탄 술탄들의 조상 남부 깔리만탄이면 반자르마신(Bajarmasin)이나 빨랑까라야(Palangkaraya) 같은 도시들이 있는 다약족 지역입니다. 용맹한 다약족은 외세와 강력히 맞서 싸웠고 수많은 술탄국들이 세워졌지만 어느 시점에서 술탄들 대부분이 네덜란드 식민정부와 손잡고 우호적인 세력으로 돌아섭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시절 깔리만탄에서 벌어진 독립군들의 항전 기사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예를 들어 서부 깔리만탄 주도인 뽄띠아낙의 시립 박물관에 가보면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당시의 역사는 마치 칼로 오려낸 듯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은 당시 그 지역이 네덜란드 식민정부 측에 서서 수카르노의 인도네시아 정부에 맞서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죠. 그..

[동부자바 민화] 투계왕 찐덜라라스(Cindelaras)

[동화] 찐덜라라스(Cindelaras) 옛날옛절 까후리빤 왕국에서 갈라져 나온 두 나라 중 하나인 젱갈라 왕국(Kerajaan Jenggala)을 라덴 뿌트라 국왕이 다스리던 시절의 일입니다. 그는 착한 왕비와 아름다운 후궁을 거느리고 화려한 궁전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후궁의 아름다운 미모 속에 숨겨진 악독한 마음이 문제였습니다. 후궁은 왕비를 질투하며 그 자리를 빼앗고 싶어 안달했습니다. 그녀는 어의와 음모를 꾸몄습니다. 어느날 후궁이 꾀병을 부려 병석에 눕자 국왕은 즉시 어의를 불러 후궁을 진맥하도록 했습니다. “전하, 누군가 후궁마마 음료에 독을 탄 것 같습니다.” 어의의 보고에 왕은 크게 놀랐습니다. “누가 감히 내가 총애하는 후궁에게 독을 먹였단 말이냐?”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독을..

[술라웨시 무나 민화] 라물루 이야기 (Kisah La Moelu)

[술라웨시 동남부 민화] 라물루 이야기 (Kisah La Moelu) 옛날옛적 술라웨시 동남부 한 마을에 라물루(La Moelu)라는 이름의 남자아이가 살았는데 이제 막 청소년기에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릴 때 돌아가셨죠. 그는 아버지와 살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이미 나이가 많아 생계를 돕지 못했습니다. 일은커녕 지팡이 없이는 나다니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라물루가 매일의 양식을 얻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고기를 낚는 일뿐이었습니다. 어느날 라물루는 평소처럼 강에 물고기를 낚으러 나왔는데 낚시밥인 지렁이를 잔뜩 가지고 나와 물고기가 좀 더 많이 잡히기를 기대했습니다. 그가 강가에 도착하니 물고기떼가 수면을 어지럽히..

발리섬이 자바섬에서 분리된 이유

[정리] 발리해협 생성고사 옛날 옛적, 시디 만트라(Sidi Mantra)라는 강한 도력을 가진 브라흐만 계급의 도인이 발리에 살았습니다. 그는 상향 위디야(Sanghyang Widya)라고도 불리는 바타라 구루(Batara Guru)신의 축복을 받아 큰 재물과 아름다운 아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힌두의 바타라 구루 주신은 예전 이야기 속에서 한번 등장한 적이 있습니다. 혼인 후 몇 년이 지나 그는 아들을 낳아 마닉 앙꺼란(Manik Angkeran)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마닉 앙꺼란은 잘생기고 영리한 청년으로 자라났지만 청소년기에 도박에 빠져 성인이 되어서도 도박에서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도박에서 돈을 잃으면 부모 소유의 물건들을 잡혔고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면서도 부끄러움을 몰랐죠. 그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