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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와 쁘닝(Rawa Pening) 전설

beautician 2022. 4. 6. 12:01

바루끌린팅 전설의 짝퉁 후속편: 라와 쁘닝(Rawa Pening)

 

이 이야기는 나가 바루끌린팅, 큰 뱀의 전설에서 이어지는 후속편 성격입니다.

https://blog.daum.net/dons_indonesia/3191

 

내가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착한 뱀

나가 바루끌린팅 전설 아주 오래 전 옛날에 드망 망이란(Demang Mangiran) 주민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남자를 접한 적 없는 처녀가 임신해 아홉 달 하고도 하루 만에 어른 팔

blog.daum.net

 

바루끌린팅 전설의 모든 버전들이 늘 비극적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중부자바 라와 쁘닝(Rawa Pening)이란 늪지에 대한 전설에도 바루끌린팅이 등장해 산을 휘감는데 여기 나오는 산은 머라삐산이 아니라 뗄로모요 산(Gunung Telomoyo) 산입니다. 산의 규모가 작아서인지 이 버전에서 바루끌린팅은 산을 감싸는 데에 성공하고 아버지에게 아들로 인정받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아버지도 끼 와나바야가 아니라 끼 하자르(Ki Hajar)라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바루끌린팅은 뚜구르 언덕(Bukit Tugur)이란 곳의 동굴에서 명상을 한 후 인간으로 거듭납니다.

 

그런데 마치 이 이야기의 후속편처럼 빠똑(Pathok) 마을의 잔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빠똑 마을 사람들은 잔치를 위해 산과 들에서 음식들을 가져왔는데 산에 간 사람들 중엔 명상에 잠긴 큰 뱀이 꼼짝도 안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살을 잘라와 잔치음식으로 제공합니다.

 

그렇게 잔치가 진행되고 있을 때 몸에 상처를 입은 소년이 비린내를 풍기며 마을에 들어서는데 그가 바루끌린팅이 인간으로 변한 화신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잔치음식이 넘쳐나는데도 바루끌린팅을 업신여기며 내쫓았지만 니라뚱(Nyi Latung)이라는 늙은 과부만이 바루끌린팅을 불쌍히 여겨 마을 어귀 산비탈 높은 곳 자기 집으로 데려가 음식을 주고 간호했습니다.

 

기운을 차린 바루끌린팅은 니라뚱에게 얼마간 먹을 음식을 준비해 뒷산 높은 곳에 가 있으라고 당부한 후 자신을 큰 나뭇가지를 꺾어 들고 다시 마을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아직도 잔치가 한창인 마을 한 가운데에 나뭇가지를 바닥에 박아 놓고 아무도 그것을 뽑을 수 없을 것이라 했습니다. 사람들과 마차가 지나야 하는 마을 한 가운데여서 나뭇가지 기둥을 박은 건 통행에 불편이 되고 더욱이 소년이 박아 놓은 것을 빼지 못할 리 없다 생각한 사람들이 앞다투어 나뭇가지를 뽑으려 애썼지만 아무도 그것을 뽑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바루끌린팅이 손을 대자 나뭇가지는 간단히 뽑혔고 그 대신 나뭇가지가 박혀 있던 구멍에서 세차게 물이 솟아나오기 시작해 금방 마을을 잠기게 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심상치 않은 상황에 당황했지만 물이 너무 빨리 차올라 마을을 모두 물에 잠기고 마을 사람들은 누구도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바루끌린띵이 뒷산 높은 곳에서 니라뚱을 다시 만났을 때 마음을 이미 큰 호수로 변한 후였습니다. 그 호수는 라와 쁘닝(Rawa Pening)이라 불리게 되었고 다시 큰 뱀의 모습으로 돌아간 바루끌린띵은 그 호수를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습니다.

 

라와 쁘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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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타람의 역사를 머금은 많은 유물들 중 저 똠박 바뚜끌린팅 창이 족자 술탄국이나 수라카르타(솔로) 수난국의 보물창고 어딘가에 아직도 보관되어 있다면 저 라와쁘닝의 전설은 인도네시아 여러 곳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지팡이 구멍에서 물이 솟아나 호수를 이룬 아류의 전설들 중 하나에 바루끌린팅의 이름을 대충 빌려 쓴 것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