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인도네시아 한인교회 19

끌라빠가딩 믿음교회

믿음교회 신원에벤에셀 까라왕 공장 구내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렸던 신길에벤에셀교회가 믿음교회의 전신으로 살라띠가에서 사역하던 백광현 선교사가 목회를 맡았다. 이후 교회는 1996년 7월 7일 남부 자카르타의 맘빵으로 옮겨와 창립예배를 드렸고 2000년에 끌라빠가딩으로 다시 장소를 옮겼다. 이후 백광현 선교사가 귀국함에 따라 1989년부터 인도네시아로 파송받아 살라띠가에서 현지인 선교에 전념하며 살라띠가 신학교(STTN – Sekolah Tinggi Teologia Nusantara)를 설립한 이재정 선교사를 2대 담임목사로 청빙했다. 맘빵에서 끌라빠가딩으로 옮겨가 끌라빠 가딩 머나라 콘도미니엄 근처 엘찝다 건물에서 예배 드리다, 다시 블르버드 길 맨 끝 카리스마 건물에 세 들었던 믿음교회는 오랜 기도 끝에..

자카르타 소망교회

자카르타 소망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총회 세계선교위원회가 1983년 김종국 선교사를 처음 인도네시아에 파송할 때만 해도 얼마되지 않던 현지 교민수는 1993년 강원준 선교사가 파송될 당시 많은 한국기업들이 진출하며 급증하고 있었다. 자카르타 소망교회는 1994년 2월 6일 JI. Penjemhan No. 13 Keuangan Pejompongan 소재 선교관에서 첫 개척예배를 드린 후 그해 12월 4일 HKBP Kebayoran Lama에서 성도 300여명이 참석한 정식 창립예배를 드렸다. 교회는 1996년 1월 18일 JI. SIMPRUK GOLF Ⅱ로 성전을 이전했고 그로부터 22년 후인 2018년 5월 6일 새 성전을 건축해 입당예배를 드렸다. 2008년 6월 8일 초대 담임 강원준 목사가 현..

인도네시아 주님의교회

주님의교회 주님의교회의 전신은 1988년 10월 1일 Jl. Wijaya 1/23 Kebayoran Baru, Jakarta Selatan에서 창립된 선교교회다. 이후 한숭인 목사와 일단의 성도들이 따만미니 근처에 선교관(열린교회 전신)으로 분리해 나간 후 남은 이들은 현지 영의양식교회(Santapan Rohani)에서 예배 드리다가 1997년 1월 1일 현재 이름인 주님의교회로 개명했다. 김완일 담임목사는 1996년 8월 1일 부임하여 2020년 현재 근속 중이다. 주님의교회는 유치원 사업, 현지인 교회 설립을 활발히 진행하면서 모든 목회, 선교사업을 효율적으로 통합해 진행할 본부 성전의 필요성을 놓고 기도하다가 마침내 2001년 11월 11일 뜨븟 성전 증개축공사를 시작해 2002년 10월 13일 새..

인도네시아 한마음교회

한마음교회 한마음교회는 2002년 6월 30일 박헌식, 송창근 집사 등 일곱 가족이 모여 교회를 준비하다가 그해 10월 장영수목사를 청빙하였고, 2003년 1월 21일 곽선희 목사를 모시고 창립예배는 드리며 시작되었다. 2007년 3월 5일 한마음교회는 인도네시아에서 라디오채널을 시간제로 임대해 한국 기독교방송을 송출하는 극동방송 사역을 지원한 이래 현재까지 해피자카르타 사역을 적극적으로 협조하며 후원하고 있다. 2010년 1월 3일 현재의 다르마왕사 스퀘어(Darmawangsa Square)로 교회를 이전했다. 한마음교회이 운영했던 노인대학은 대부분 교회들이 유아, 유치원 또는 청소년 관련 프로그램들을 가지고 있던 상황에서 대체로 소외되거나 간과되기 쉬운 노인층 대상 유일한 프로그램으로 교민사회의 호평..

자카르타 중앙교회

자카르타 중앙교회 자카르타 중앙교회는 1991년 10월, 3개 가정의 성경공부에서 태동해 그해 12월 15일 다안모곳 거리 초입 찌뿌뜨라 호텔 근처 현지인 교회인 은혜감리교회에서 11개 가정이 어성호 목사를 모시고 창립예배를 드리면서 시작했다. 자카르타에서 연합교회와 선교교회에 이어 세 번째 한인교회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들 3개 교회가 함께 모여 예배드린 1993년 부활절은 자카르타 한인교회간 첫 연합행사로 기록된다. 원래 현지인 선교사역으로 소명받은 어성호 목사는 본국 감리교단 요청으로 그렇게 한인교회 설립에 간여했지만 1993년 5월 2대 담임 조시철 목사에게 자카르타 중앙교회를 위임한 후 다시 현지인 선교로 떠났고 중앙교회는 지금의 블록엠 빠사라야 백화점 뒷편의 에파타 교회로 예배처소를 옮겼다..

자카르타 늘푸른교회

자카르타 늘푸른교회 늘푸른교회는 자카르타 중앙교회에서 종교적 신념 차이를 이유로 독립해 나왔다. 모교회인 춘천중앙교회의 중재 아래 1년간의 냉각기를 가진 후 교회의 자산과 기물을 균등 분배하는 정상적인 방법을 따랐다. 처음엔 박의복 장로를 비롯한 11개 가정이 따로 예배를 드렸고 이후 1999년 9월 26일 브라위자야 7번지 우즈베키스탄 대사관저였던 가정집을 임차해 김선진 초대 담임목사를 모시고 ‘늘푸른교회’라는 이름으로 창립예배를 드렸다. 당시 예배출석자 25~30 명 선이던 교세는 후임 김신섭 목사가 부임하던 2004년 6월경 약 100여명 규모로 성장해 있었다. 브라위자야 교회의 임대연장이 되지 않아 새 교회 장소를 찾던 중 안타사리 거리의 2,000m2 부지에 교회를 건축하기로 결정하고 신동주 권..

선교교회와 인도네시아 열린교회

인도네시아 열린교회 1988년 10월 2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통합)에서 파송한 한숭인 목사가 92명의 교우들과 함께 인도네시아 서부개혁교단(G.P.I.B) 산하 에파다 교회에서 선교교회라는 이름으로 창립예배를 드렸다. 이 선교교회가 인도네시아 열린교회의 전신이며, 이후 여러 교회들이 여기에 뿌리를 두고 생겨났다. 1994년에 대지 6,415m2 규모의 새 성전이 완공되어 그 해 5월 8일에 헌당예배를 드렸고 2002년 선교교회에서 열린교회로 개명했다. 열린비젼센터는 2012년에 기공해 건평 2,572 ㎡(약775평) 규모 4층 건물을 완공하고 2016년 1월 헌당에배를 올렸다. 한인 대상 선교사역으로 한인 2세 교육을 위한 하나유치원을 1988년 11월에 설립하고 언어, 정신, 행동, 성격 등 발달장..

수라바야 한인교회

수라바야 한인교회 1982년 3월 27일 세워진 수라바야 한인교회는 인도네시아 한인교회들 중 연합교회 다음으로 그 연조가 깊다. 말랑에서 사역하던 한숭인 선교사가 그해 12월 부임할 때까지 창립 후 9개월 동안 자체 예배를 드렸다. 한숭인 목사가 1988년 자카르타 선교교회를 개척하러 떠난 후 2대 이장호 목사(1988년), 3대 김충환 목사(1993년), 4대 김경식 목사(1996년), 5대 김철민 목사(1997년, 현재 대전제일교회 담임), 6대 조승철 목사(2005년), 7대 박흥식 목사(2006~2012)가 담임목사를 역임했다. 이후 2년간 공석이던 담임목사 자리에 김상현 목사를 2014년에 청빙해 왔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영락교회 후원)에서 타문화권 선교사로 2003년 인도네시아에 파송..

자카르타한인연합교회

서만수 목사와 자카르타한인연합교회 1970년 9월 28일 대구 서현교회에서 개최된 제55회 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에서 김창인 목사는 “남방 밀림 속에 그리스도의 게릴라를 투입시킨다”며 1939년 평양에서 태어나 총신 신학과 65학번 1회 졸업생인 서만수 목사의 인도네시아 파송을 결정했다. 그리하여 1971년 12월 31일 자카르타에 처음 도착한 서목사는 비록 첫 한국인 선교사는 아니지만 현지 한국교회사에 가장 굵고 큰 획을 긋는 인물로 성장한다. 수라바야를 거쳐 술라웨시에 들어가 네덜란드 기독개혁교회의 토라자 마마사 교단 소속 선교사로 현지인 선교에 전념하던 그가 대사급 수교 이전이었던 당시 한 줌도 되지 않던 동포들을 위한 목회를 병행하기로 한 것은 자카르타 한인 크리스천들의 영적 갈급함을 알았기 때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