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인도네시아 니켈광산 4

니켈광산 영적 방어작전 (15)

ep15. 싱가포르 아시아 시빌리제이션 뮤지엄이 강 너머로 보이는 UOB 플라자의 강변 광장에서 맞는 싱가폴의 오전은 부산하면서도 싱그럽고 평화롭기까지 합니다. 새벽 비행기로 자카르타를 출발해 싱가폴 창이공항에 내려 이스트웨스트라인(Eastwest Line) 지하철을 타고 일단 타나메라(Tanah Merah)역에서 같은 라인의 시내행 열차로 한 번 갈아탄 후 한 시간 가량 달려 도심 시청역(씨티홀)의 바로 다음인 레플스 플레이스(Raffles Place) 역에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가면 도심 번화가가 나타납니다. UOB 플라자 건물은 거기서 멀지 않습니다. 그 건물을 끼고 흐르는 싱가폴리버의 잘 정비된 강변엔 아놀드 슈왈츠네거 닮은 매우 건장한 참새 한 마리가 앉아 있습니다. 청동으로 제..

니켈광산 영적 방어작전 (13)

ep13. 나타샤 어째서인지 몰라도 릴리는 왕구두의 송구영신 행사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듯 했습니다. 사실 이 행사는 내가 끈다리를 떠나던 2주 전만 해도 계획에 없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릴리가 갑자기 이 행사의 개최를 결정했다는 것인데 급조된 행사치고는 그 규모가 엄청나 억대의 비용이 투하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왕구두와 아세라 전역의 주민들은 물론 부빠띠를 비롯한 지역 고위 관료들과 군, 경찰들을 대대적으로 초청했고 왕구두 중앙통의 큰 공터엔 대규모 무대와 함께 VIP들을 위한 초대형 차양도 설치했습니다. 그동안 허가를 진행하고 선적서류를 만들면서 관청에는 이미 필요 이상의 지출을 한 상태였는데 광물원석 수출금지조치의 발효를 불과 열흘쯤 앞두고 이런 행사를 위해 또다시 엄청난 지출을 불사하는 이유를..

니켈광산 영적 방어작전 (8)

ep8. 페리와 로니 물론 벌크선에 가겠다고 해서 무작정 배를 타면 되는 일은 아니었어요. 릴리는 자기 배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바지선을 빌릴 때 팩케지로 따라오는 턱보트(Tugboat)가 있었지만 용도 이외로 사용한다는 문제를 차치하고도, 턱보트로는 본선에 대고 옮겨 타기가 수월치 않았습니다. “나랑 같이 갑시다.” 그렇게 말한 사람은 모셈파의 또 다른 현장을 맡고 있던 페리 소장입니다. 그는 인원만 득실거렸지 광산 경험은 거의 없는 로니의 현장을 자주 방문하며 작업상 조언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비록 조언이라 하지만 그와 같은 전문가가 얘기하는 작업절차와 방법에 대한 의견이란 것은 로니 측의 이권과 대립하지 않는 한 반드시 따라야 할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는 실제로 모셈파 현장 전체에서 일정부..

니켈광산 영적 방어작전 (6)

ep6. 흑마술 그 두 사람과 로이 아빠가 그날 아침 내가 끈다리를 출발할 때 사무실에 나와 있지 않을 것이란 사실도 릴리는 사전에 설명해 주지 않았습니다.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어요. 전날 밤 먼저 출발해 현장에 올라간 것일까요? 로이 아빠의 전화는 먹통이었습니다. 끈다리를 벗어나면 아세라만 해도 전화가 터지지 않는 곳이 많았고 토비메이타 지역의 광산지대에 들어서면 심빠띠(simPATI) 이동통신 신호가 잡히는 언덕이 하나 있어 전화를 하려는 사람들이 차를 타고 그 언덕에 모여들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곳 길가엔 늘 차량들이 몇 대씩 서 있었고 합판으로 대충 지어진 간이 와룽(warung) 한 개도 커피 타주는 사업이 성업 중이었습니다. 그날 아침 간신히 연락이 닿은 로이는 자기 아버지가 전날 밤 왕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