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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기사번역

영어와 인니어를 넘나드는 겉멋 가득찬 인니식 말투

beautician 2022. 10. 29. 11:01

영어와 인도네시아 사이를 줄타기하는 남부 자카르타인들의 대화법

 

 

남부 자카르타 사람들은 영어와 인도네시아어 사이를 넘나들며 대화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Unsplash/Rendy Novantino)

 

남부 자카르타에 사는 사람들은 곧잘 영어와 인도네시아어 사이를 넘나들며 대화하곤 한다. 이런 식으로 두 언어를 뒤섞어 한 문장은 영어로, 다음 문장은 인도네시아어로 섞어 말하는 것이 일부 인도네시아인들 사이에서 일상의 트랜드가 된 지 오래다.

 

회사에서는 영어를 사용하고 집에서는 인도네시아어를 사용하는 상당수 남부 자카르타 사람들에겐 이게 별반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게 바로 이른바 바하사 작셀(Bahasa Jaksel), 즉 남부 자카르타 말투다.  

 

남부 자카르타의 한 스타트업 기업에서 주요 직책을 맡아 일하고 있는 22세의 미셀 레즈키(Michelle Rezky)는 영어를 사무용 언어 중 하나로 사용하는데 두 언어를 넘나드는 말투에 이미 익숙하다.

 

그녀의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비슷한 말투를 스는 남부 자카르타 사람들이다. 더욱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무실과 소셜미디어에서 영어와 인도네시어어를 섞어서 쓰는 중이다. 남부 자카르타 사람들 중엔 두 개 언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바이링구얼(bilingual)들이 많고 외국 문화에 노출되는 빈도도 많아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속도도 빠르고 자기도 모르게 두 개의 언어를 섞어 쓰면서도 그걸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벌어진다.

 

그녀는 이런 현상이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미 남부 자카르타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전체에서 그런 식의 대화법과 말투가 유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버카시에 사는 인문학 석사 나디아 이자투니사(Nadia Izzatunnisa)는 두 언어를 스위치하며 동시에 사용하는 말투는 비단 남부 자카르타나 인도네시아에서만 유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한다 콩글리시(Konglish)나 싱글리시(Singlish)처럼 소위 ‘인도글리시(Indoglish)’ 현상의 출현이 꼭 인도네시아라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세계화에 따라 나타난 자연적인 것이라는 주장이다.

 

대화 속에 외국어가 섞이는 것은 인도네시아나 다른 나라에서도 그리 새로운 일이 아니지만 세계화가 더욱 진행되고 정보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이런 현상은 더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물론 어떤 인도네시아인들은 영어를 말하는 능력을 특권처럼 여기기도 하여 인도네시아어로 말하면서 대화 속에 영어단어를 일부러 끼워 넣기도 한다. 나디아는 영어 구사능력을 자신이 상류층임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고 지적한다.

 

언어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코드믹싱(code-mixing)이라고 한다. 언어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한 단면으로서, 화자(話者)가 스스로를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의 리미트를 푸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남부 자카르타 말투가 출현한 것은 그만큼 인도네시아에서 영어가 많이 쓰이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27세의 음성주석가이기도 한 나디아는 인도네시아어가 얼마나 역동적으로 진화하는가 몇 가지 예를 들었다. 새로운 단어들이 은어나 비공식적 대화체에서 인도네시아 대사전에 포함되었는데 그 중에는 바뻐르(baper – 지나치게 감성적인), 마거르(mager –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텔레비젼만 보는 사람), 께뽀(kepo – 꼬치꼬치 캐며 참견하다) 등이다.

 

 

언어를 섞어쓰는 대가

하지만 언어를 섞어 쓰는 것은 영어를 인도네시아어에 통합시키는 형태여서 어떤 면에서는 모국어를 교란시키는 ‘민족주의적이지 못한’ 행동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인도네시아인들 중에는 민족의 선구자들이 ‘젊음이들의 맹세’(Sumpah Pemuda)에서 요구한 것처럼 인도네시아인들이라면 올바른 인도네시아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실제로 인도네시아인들 중 인도네시아어를 지키기 위해 소셜미디어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언어 활동가들도 많다.

 

이러한 대화언어의 코드믹싱 관행이 궁극적으로 인도네시아어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나디아는 말레이시아에서 로작 랭귀지(rojak language)라 부르는 과도한 형태의 코드스위칭 현상이 벌어져 많은 말레이 단어들이 일상대회에서 사라져버리는 정도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로작 랭귀지란 과일과 야채들을 섞은 샐러드음식인 루작(rujak)처럼 ‘섞여버린 언어’라는 뜻이다.

 

중부자바 출신 22세의 밀리아나 에밀은 남부 자카르타에서 일하고 있는데 코드믹싱 현상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런 말투를 쓰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런 말투가 딱히 거슬리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으니 그걸로 되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온전히 인도네시아어만 사용하는 대화보다 영어를 섞어 쓰면서 얘기할 때 강조한 특정 영어 단어가 조명하는 구체적인 의미가 섬세하게 부각되어 더욱 이해하기 쉬워진다는 부분이다. 그래서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에밀 같은 사람들에게는 남부 자카르타 말투로 설명하는 것이 귀에 더 쏙쏙 들어온다.

 

하지만 그저 멋져 보이려고 남부 자카르타 말투를 제멋대로 쓴다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게 되기도 한다.

 

“말하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가 중요합니다. 그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한다면 똑똑한 사람이란 인상을 갖게 되죠. 하지만 영어와 인도네시아를 마구 섞어 쓰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은 그저 겉멋이 든 사람이란 인상을 줄 뿐입니다.”

 

남은 숙제들

남부 자카르타 말투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미셀은 정도를 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언제 누구와 대화할 때 해당 말투를 사용하면 될지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당연히 오직 인도네시아어만 또는 오직 영어만 사용하여 말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디아는 언어도 진화하고 있으므로 코드믹싱 대화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언어의 순수성 보존을 위해 어쩌면 정부 차원의 제재와 간섭이 있을 수도 있고, 그래서 인도네시아인으로서 올바른 인도네시아어 사용법을 먼저 분명히 배우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맞지만 인도네시아어를 지배하는 룰은 ‘인도네시아인들이 스스로 그 사용법을 쉽게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언어도 시대와 트랜드를 따라 유행을 탄다는 뜻이다.

 

출처: 자카르타포스트

https://www.thejakartapost.com/culture/2022/10/24/english-jaksel-style-why-some-indonesians-jump-between-two-language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