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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돈세탁의 천국

beautician 2023. 4. 3. 11:55

인도네시아, 돈세탁의 천국

2023년 4월 1일(토) 자카르타포스트 사설

 

법집행을 해야 할 검사 삐낭키 시르나 말라사리(Pinangki Sirna Malasari)가 경제범 도망자 조코 짠드라(Djoko Tjandra)에게서 거액의 뇌물을 받고 돈세탁을 한 혐의로 붙잡혀 법정에 섰다. 사진은 2020년 9월 23일 공판 장면 (JP/Dhoni Setiawan)

 

재무부라는 한 개의 부처 안에서 무려 349조 루피아(약 30조 원) 규모에 달하는 총 300여건의 의심스러운 금융거래가 드러나며 어마어마한 돈세탁이 이루어진 정황이 공개된 것은 어쩌면 인도네시아 공직사회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부정부패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국가적으로 불행 중 다행, 또는 축복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금융거래보고분석원(PPATK)와 부패척결위원회(KPK), 그리고 재무부 간에 벌어진 책임공방은 국민들의 분노를 불어 일으키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돈세탁 예방 및 방지를 위한 국가조정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하고 있는 마흐푸드 MD 정치사법치안조정장관의 관련 설명을 접한 재무부 감찰국장실, 국세청 및 관세청 사람들은 비난 여론의 화살을 피하고 자신들이 그간 제대로 일했다고 강변하기 위해 바쁘게 머리를 굴리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처했다.

 

3월 초에 재무부 부패 스캔들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마흐푸드 장관은 지난 3월 29일(수) 국회에서, 2009년-2023년 기간 PPATK가 재무부에 제출한 의심스러운 금융거래들에 대한 분석보고서가 스리 물야니 인드라와티 재무장관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보고서 내용을 주무른 부하직원들에게 놀아났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스리 장관쯤 되는 철저하고도 청렴한 인물이 재무부에 만연한 거대한 부정부패풍조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척결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마흐푸드 장관에 따르면 문제의 349조 루피아가 대부분 세무공무원들로 이루어진 461명의 재무부 직원들이 연루된 수상한 금융거래 규모가 35.5조 루피아(약 3조 원), 30명의 재무부 직원과 외부 인물들이 연루된 사안 53조8,200억 루피아(약 4조6,000억 원), 금융범죄조사와 관련된 재무부 직원과 외부 인사들이 연루된 260조 루피아(약 22조2,000억 원)으로 구성된다.

 

마흐푸드 장관의 발표를 들은 국민들이 가장 의아해했던 부분은 금융거래를 모니터링하는 금융 전문가들과 변호사로 구성된 PPATK가 그렇게 많은 분석 보고서를 내고서도 실질적으로 단 한 건의 돈세탁 혐의도 특정해 기소하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전장에서 적을 발견해 탄약이 바닥나도록 기관총을 갈겨 댔지만 적을 단 한 명도 맞추지 못했다는 얘기다.

 

2010년 돈세탁방지법이 제정되면서 그토록 많은 경고음을 내며 경각심을 불려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10여년의 시간이 지난 2023년에 이르러 단 한 개의 정부부처(재무부)에서 이 정도 규모의 돈세탁 정황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가장 청렴, 결백해야 할 재무부가 저럴 진데 다른 부처들이라고 독야청청할 리 없는 일이다.

 

돈세탁방지법(AML)은 은행, 기타 금융서비스 제공자, 카드결제 서비스 제공자, 전자화폐 제공자, 저축 및 대출업무를 하는 협동조합, 선물거래 회사, 부동산회사, 자동차 딜러 및 보석상 등에 거래내용에 대한 보고의무를 부과했다.

 

여기 명시된 모든 보고의무자들은 거래자 실명을 파악해야 하고 고객들이 비정상적인 거래를 할 경우 이를 PPATK에 보고해야 하는 책임을 진다.

 

한편 돈세탁방지법에 따르면 재산형성과정에 대해 검사가 아니라 용의자가 입증해야 한다. 즉 용의자가 스스로 무죄를 입증하지 못하면 유죄 취지로 기소된다는 뜻이다. 문제의 돈이 앞서 어떤 범죄로 인해 만들어졌는지를 수사기관이 굳이 입증할 필요 없이 용의자 스스로 재산형성과정의 정당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해당 자산은 국가가 몰수하게 된다. 재산몰수는 돈세탁 범죄자에게 부과되는 기본 처벌 중 하나다.

 

하지만 의심스러운 금융거래를 특정하고 조사하여 돈세탁 범죄로 기소하는 것이 일반 범죄를 취급하는 것보다 훨씬 간편함에도 불구하고 돈세탁 범죄 조사와 처리에 대한 홍보와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일반인들은 물로 법집행관들이나 판사조차도 해당 실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부분에 허점이 있다.

 

그 결과 경찰, KPK 등 모두 15개나 되는 법집행기관들이 있지만 상호조율과 협조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실제로 인도네시아는 ‘돈세탁 천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돈세탁 징후가 뚜렷한 의심스러운 금융거래들이 발견되어도 완벽한 무관심으로 방치해 버린 전례는 수없이 많다. 부패범죄 용의자들이 자신의 운전사나 비서관, 비선 측근 등을 통해 수십 억 루피아를 미화나 싱가포르 달러로 환전한 사건에 대한, 재판 중 절대 외면할 수 없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와도 애써 이를 못본 척하고 엉뚱한 판결을 내는 경우 역시 비일비재하다.

 

큰 손 고객들을 외면할 수 없는 외환 환전상들이 환전을 원하는 고객 요구에 부응했다고 하면 재판부가 아, 그러시냐 하며 그냥 넘어가는 식이다. 환전상들에 대한 감독이 느슨해 매년 족히 수백만 건에 달할 의심스러운 금융거래가 걸러지지 않고 있다.

 

얼마전에 주범 페르디 삼보 전 치안감이 사형선고를 받은 J순경 계획살인사건을 돌이켜보자.

 

당시 삼보의 부인은 급여 400만 루피아(약 34만 원) 수준인 J순경의 은행구좌를 사용해 수억 루피아를 국영은행에 차명으로 보관했다. 이런 것이 ‘의심스러운 금융거래’, 즉 돈세탁의 한 예다. 하지만 삼보 부인은 돈세탁 혐의에 대해 조사를 받지도, 기소되지도 않았다.

출처: 자카르타포스트
https://www.thejakartapost.com/opinion/2023/03/31/money-laundering-have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