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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비에 출장비가 달리는 이유

beautician 2022. 10. 18. 11:43

통역비 하루 350불.

지방 출장비 하루 200불

 

그렇게 사흘(2박3일) 수라바야 수행하여 기업 통역을 하기로 하면서 1,500불로 비용을 결정한 건 나로서는 어느 정도 양보를 한 셈이지만 나를 쓰기로 한 사용자 측에서는 왜 출장비가 붙는지 부당하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는 부분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수라바야 출장을 가기 위해 들어가는 교통, 숙박비를 비롯한 비용 일체를 사용자 측에서 부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출장비'라는 단어에 부연설명하지 않았던 것들을 설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출장비란 사실은 내가 자카르타에 있었다면 '자카르타에서' 발생하지 않았을 비용에 대한 보전, 또는 내가 자카르타를 떠남으로 인해 발생하는 리스크, 자카르타에 있었다면 만들 수 있었던 수입에 대한 보상 등을 포함한, 통칭 '기회비용에 대한 보전' 성격이니까요, 하지만 청구서에 기회비용 하루 200불이라 적을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출장비라고 계상해 통보했던 겁니다.

 

실제로 9월 마지막 주를 두고 마라스피치의 비즈매칭 기업인팀이 9월 24일부터 들어와 27일(화) 포시즌 호텔에서 메인 이벤트를 했는데 그걸 내가 받아 코윈스블루에 연결해 놓고서도 정작 나는 메인 이벤트에 참석하지 못하고 수라바야 행 비행기를 타야 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e-북 인도네시아어 번역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한 스타트업 출판사가 현지 출판사 미팅을 위해 25일부터 자카르타에 들어왔는데 시기가 겹쳐 미팅일정이 잡히지 않아 지난 9월 상순 내가 아직 한국에 있을 때 서울에서 미리 미팅을 하고 왔습니다.  대우건설에서 신수도로 들어가는 실사팀도 같은 일정으로 들어왔습니다. 그것 말고도 9월 하순엔 다른 손님들이 더 있습니다. 우연히 그렇게 겹친 것이죠.

 

아무튼 내가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하거나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데도 수라바야 일정 때문에 할 수 없게 된 것, 부득이 비용을 들여 다른 쪽에 요청을 해야 하는 사안, 리스크를 감수하지만 사건 방지를 사전에 막는 것은 어렵고 데미지 컨트롤만 가능한 상황 등을 비용으로 환산한 것이 '출장비'였던 겁니다.

 

다행히 한국측에선 이를 이해해 주었습니다.

이런저런 친분과 인맥의 문제도 있지만 난 사실 그 정도 통역비를 받을 만한 가격표가 달린 인간이고  자카르타에서 4시간 또는 8시간을 할애해 통역을 붙는 게 아니라 지방출장 수행으로 하며 정해지지 않은 시간 동안의 통역은 물론 예상할 수 없는 현지상황에 대응해 가이드나 코디네이터 비슷한 일을 해야 하니 사실은 좋은 가격을 제시한 셈입니다. 그런데 출장비에 동의한 사용자 측이 갑자기 나한테 수라바야 행 비행기표를 별도로 사라고 하는 대목에서 '출장비'라는 항목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다행히 잘 풀어갈 수 있었습니다.

 

돈을 지불하는 쪽과 받는 쪽은 그 사고방식이나 마음가짐이 전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걸 조율하는 것이 수완이고 경륜이며, 가격표의 구실, 경력과 진심을 증빙하는 것이죠.

 

사실 환율이 치솟아 손해가 막심한 시기에 그것도 클레임 처리를 위해 당신 거래선들을 데리고 들어온 학군 선배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있어 도착하는 날 호텔 도착 시간이 너무 늦어 미리 치킨도 주문해 놓고, 다음날 공항 출발할 때 인원초과 문제가 생겨 별도의 차량을 주문해 준비해 놓는 등의 성의를 보였고 해당 비용은 따로 청구하진 않았습니다.

 

독해야 남자인데, 나름 애는 쓰지만 아주 독해지긴 쉽지 않은 듯합니다.

물론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손도 못댈 정도로 독한 인간이 될 지도 모릅니다.

 

 

2022, 9. 28.